[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한국 여자 골프 최고 권위 대회로 여겨지는 DB그룹 제39회 한국여자오픈(총상금 12억 원)에서 생애 첫 우승을 따낸 이동은(SBI저축은행)은 ‘골프 DNA’를 물려받은 대표적인 선수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이건희 씨, 어머니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준회원인 이선주 씨다. 다만 그의 부친인 이건희 씨는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부모가 프로 무대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 꿈을 딸이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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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골프in 조원범 기자) |
이동은은 부모의 뒤를 따라 자연스레 골프 선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딸에게 힘든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동은은 초등학교 때부터 주어진 모든 훈련을 성실하게 해내며 부친을 설득했다. 골프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 이동은은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고, 아마추어 국가대표를 거쳐 지난해 KLPGA 투어에 데뷔했다. 지난해 준우승 2번을 기록하며 우승 문턱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언제든 우승할 수 있는 선수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가장 큰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첫 우승트로피를 품었다.
우승은 시간문제였다…장타+아이언 정확도 1위
이동은은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제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가 우셨다. 아빠가 투어 생활을 오래 했지만 우승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빠가 현장에 못 오셔서 통화를 했는데 아빠가 ‘잘했다, 너무 장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빠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골프를 열심히 했는데 목표를 처음 이뤘다. 골프하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동은은 아마추어 시절 크게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다.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황유민, 방신실, 김민별 등 동기들이 워낙 강력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동기들보다 뒤처졌다. 그는 “동기들이 우승하는 게 멋있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빨리 우승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면서도 “하지만 성장을 위한 발판이라는 생각에 묵묵히 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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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시절 이동은이 아버지 이건희 씨에게 골프 레슨을 받는 모습.(사진=이동은 측 제공) |
프로 선수 출신 부모의 격려와 조언도 큰 힘이 됐다. 그는 “작년에 우승이 없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부모님이 ‘충분히 스윙이 좋고 실력이 있으니까 잘할 수 있다, 인내하고 기다리자’는 말을 해주셨다. 부모님에게 눈에 보이는 큰 문제나 멘탈적으로 피드백을 받는다. 부모님이 프로 출신이어서 조언들이 더 믿음직스럽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동은은 KLPGA 투어의 새로운 ‘장타 여왕’이다. 신인이었던 지난해 평균 254야드의 드라이브 샷을 날리며 방신실, 윤이나 등 쟁쟁한 선배들에 이어 장타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방신실을 제치고 장타 1위(259.79야드)에 올라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빠른 스피드를 내는 훈련을 많이 했다. 또 타고난 힘이 좋아서 스윙할 때 힘보다는 빠른 회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윙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코어 운동을 많이 하고 스틱으로 빠르게 빈스윙 연습을 했다”며 “코어 힘과 회전 운동이 장타 비법”이라고 소개했다.
올해는 그린 적중률까지 1위(78.73%)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10위(75.59%)에서 크게 성장한 수치다. 이에 대해 이동은은 “페이드 구질을 확실하게 구사하면서 아이언 샷이 덩달아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자오픈이 열린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은 장타보다는 정교한 샷과 퍼트를 잘하는 선수에게 유리하다. 이동은은 “장타보다 정확성에 포커스를 뒀고, 그린을 공략할 때도 핀으로 바로 쏘는 홀과 안전하게 공략하는 홀을 구분해서 경기했다. 퍼트로 승부를 보려고 했는데 이 부분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부연했다.
이동은은 장타와 정교한 플레이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단연 장타를 고르겠다고 했다. 그는 “남들이 롱 아이언을 잡을 때 저는 짧은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하는 게 큰 이득이다. 골프는 쇼트게임과 퍼트를 잘해야 우승하는 것이고 장타는 플러스 요인이긴 하지만, 장타를 치고 공이 빵빵 날아가는 걸 보는 게 나무나 재밌다”고 밝혔다.
경기할 때 흔들림 없는 표정과 차분함도 이동은의 큰 장점이다. 그는 “차분함이 결국 집중력으로 이어진다. 차분함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실수해도 화를 안내려고 노력하고 실수를 빨리잊으려고 한다. 경기 때 자주 숨을 깊게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간중간 간식을 먹으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걸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타고난 성실함이 무기…SBI 골프구단 간판 ‘우뚝’
인터뷰에 동석한 어머니 이선주 씨는 이동은에 대해 “어릴 때부터 성실했다.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었다”며 “대회가 끝난 다음 날도 깨우지 않아도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연습하러 나갔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가끔 남편이랑 ‘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라고 얘기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키우면서 큰 소리 한 번 내본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타고난 성실함은 이동은이 지닌 가장 큰 무기다. 그는 앞서 12개 대회에 모두 출전했고 남은 18개 대회까지 올해 30개 대회를 모두 치를 계획이다. 이동은은 “대회 하나하나가 너무 아깝다. 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면서 “골프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요즘 골프에 푹 빠져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자오픈 우승으로 상금 랭킹 3위(약 4억 9954만 원), 대상 포인트 4위(221점)로 뛰어오른 그는 “이제 상금 1위나 대상 1위까지 욕심내 보려고 한다”며 “한 시즌 정상급 선수의 기준인 상금 10억 원을 넘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동은은 3년째 자신을 후원하는 SBI저축은행의 김문석 대표이사에도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덧 SBI저축은행의 얼굴이 된 이동은은 “아마추어 때부터 저를 알아봐주시고 후원해주셔서 감사하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우승으로 보답드린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도 더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동은은 20일부터 경기 안산시의 더헤븐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리는 KLPGA 투어 더헤븐 마스터즈(총상금 10억원)에서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그는 “첫 우승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펼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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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골프in 조원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