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은 비슷, 가격은 20분의 1”… 명품 닮은 ‘저렴이’ 인기

20 hours ago 3

[위클리 리포트] 확산되는 ‘듀프’ 소비… 고물가에 전 세계 ‘듀프 찾기’ 열풍
美 MZ세대 절반 “게임처럼 즐겨”… 유니클로 가방-다이소 립밤 등 인기
노동 착취-불법 이민자 고용 등… 명품 브랜드 이면도 듀프 부추겨
“창작자 의욕 떨어뜨리는 일”… 복제품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에서 판매하고 있는 ‘2WAY유틸리티숄더백’. 요시다 포터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지만 가격은 90%가량 저렴하다. 유니클로 제공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에서 판매하고 있는 ‘2WAY유틸리티숄더백’. 요시다 포터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지만 가격은 90%가량 저렴하다. 유니클로 제공
《명품 대체품 ‘듀프’ 소비 인기

복제품을 의미하는 ‘듀프(dupe)’ 제품 소비 트렌드가 고물가 시대에 ‘현명한 소비’로 주목받고 있다. 명품 로고가 주는 만족감보다 실속 있는 소비에 대한 효용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며 ‘듀프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직장인 김모 씨(39)는 지난해 11월 국내 유니클로 매장에서 업무용 가방 2개를 7만4800원에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 가방을 원래 들고 다니던 약 70만 원짜리 일본 브랜드 ‘요시다 포터’의 인기 제품인 ‘탱커 2WAY 서류 가방’의 대체품 격으로 구입했다. 유니클로 제품이 기존에 들고 다니던 포터 가방과 생김새는 매우 유사한데, 가격은 훨씬 저렴해 실용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가격이 싼데 디자인은 비슷하고, 무엇보다 수납 공간이 많고 편리해서 7개월째 잘 들고다니고 있다”며 “가격이 싸다 보니 여기 저기 들고 다니다 바닥에 놔둬도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명품스러운’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이른바 ‘듀프’ 소비가 전 세계에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 후유증,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으로 소비 여력이 감소하면서 듀프 소비 트렌드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경제적 효율성과 합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MZ세대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 같은 듀프 소비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 짝퉁과는 다른 듀프

인스타그램에 #dupe, #dupes, #dupemag 등을 검색하면 약 86만 개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인스타그램에 #dupe, #dupes, #dupemag 등을 검색하면 약 86만 개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듀프 제품은 브랜드의 가짜 로고까지 유사하게 달아 명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이른바 ‘짝퉁’과는 차이가 있다. 상표권을 침해하는 짝퉁은 불법이지만, 디자인이나 주요 특징을 따라 한 듀프 제품은 법적 문제가 될 소지는 크지 않다. 짝퉁을 구매하는 건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지만, 듀프 제품을 ‘발굴’하는 것은 오히려 자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복제품을 찾는 건 흥이 나는 일’(51%)이라고 답했다. 저렴한 듀프 제품을 찾는 것을 일종의 ‘게임’처럼 즐기는 것이다.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짝퉁 소비는 구매력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원본의 아우라에 대해 추종하고 싶은 마음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듀프 소비와는 결이 좀 다르다”며 “듀프는 원본의 아우라를 좇기보다는, 이 돈으로도 그런 성능이 나온다는 태도에서 나오는 소비 행태”라고 설명했다.

품질 개선이 거의 없는데도 팬데믹 이후 끊임없이 제품 가격을 올리는 명품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이 듀프 소비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블룸버그 통신 등은 매장에서 2600유로(약 385만 원)에 팔리는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 가방의 원가가 53유로(약 8만 원)라고 보도했다. 노동 착취, 불법 이민자 고용 등 사회적 문제와 함께 명품 시장의 마진 구조가 알려지며 거품 낀 명품 브랜드 제품에 대한 비판이 쇄도했다. 디올뿐 아니라 아르마니,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 브랜드 모두 원가 대비 매우 높은 판매가로 마진을 챙기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번지는 사이 듀프 소비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올해 2월 실시한 조사에선 미국 성인 10명 중 3명이 듀프 제품을 구매해 봤다고 답했고 ‘듀프’에 대해 ‘패셔너블’(69%), ‘트렌디’(68%) 등의 단어를 떠올렸다.

패션잡지 보그는 “듀프가 올해 패션 뷰티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며 “틱톡과 Z세대(199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실용적 소비 태도가 이를 촉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dupe’의 연관 검색어를 입력하면, 각종 듀프 제품 구매를 자랑하거나 소개하는 영상이 수십만 개에 육박한다.

● 패션·뷰티·가전 등 듀프 열풍

6만 원 상당의 샤넬 립밤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3000원에 다이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다이소 제공

6만 원 상당의 샤넬 립밤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3000원에 다이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다이소 제공
듀프 열풍은 패션, 뷰티, 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고 있다. 특히 ‘가성비’를 내세우는 SPA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듀프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나아가 크리스토퍼 르메르, JW앤더슨, 질샌더, 마르니, 지방시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클레어 웨이트 등과 협업한 한정판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유니클로의 가성비는 유지하면서,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의 감성을 경험할 수 있어 제품이 발매될 때마다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서곤 한다. SPA 브랜드 자라(ZARA) 역시 듀프의 선두주자로 ‘샤넬 느낌 트위드’, ‘프라다 느낌 신발’이 화제를 모은다.

다이소의 뷰티 카테고리를 올리브영 독주 체제를 위협할 만큼 급성장시킨 것도 듀프 제품의 적극적인 출시다. 대표적인 사례가 6만 원 상당의 샤넬 립밤을 듀프한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이다. 다이소는 샤넬 제품 가격의 20분의 1 수준인 3000원으로 출시해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다이소는 1020대 여성 소비자층 유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이슨 에어랩과 성능은 비슷한데 가격이 20만 원가량 저렴해 돌풍을 일으킨 샤크닌자의 샤크 플렉스타일 에어스타일러. 샤크닌자 코리아 제공

다이슨 에어랩과 성능은 비슷한데 가격이 20만 원가량 저렴해 돌풍을 일으킨 샤크닌자의 샤크 플렉스타일 에어스타일러. 샤크닌자 코리아 제공
미국 생활가전 기업 샤크닌자의 뷰티 브랜드 샤크뷰티의 대표 제품인 ‘샤크 플렉스타일’은 2020년대 전후 프리미엄 헤어드라이어 시장 확장의 중심이었던 다이슨의 ‘에어랩 스타일러’ 듀프 제품으로 불린다. 샤크 플렉스타일은 다이슨 제품의 약 50∼60%에 불과하다. 이 제품은 가성비가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렸다. ● “듀프는 디자인의 미래를 죽인다” 비판도

일각에서는 듀프 소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듀프가 불법은 아니지만, 복제 대상 브랜드가 제품 개발, 마케팅 등을 거쳐 시장에 내놓은 것을 일부 베껴서 돈을 버는 것이 불편하다는 시선이다. 미국 가구 브랜드 헬러의 존 에덜먼 최고경영자(CEO)는 “당신이 구매하는 모든 복제품은 디자인의 미래를 죽인다”고 비판했다. 복제품으로 진품 소비가 줄어든다면 창작자는 어떻게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비판 속에서도 고물가와 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분위기로 인한 듀프 소비 트렌드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복제 대상인 명품 브랜드들이 듀프 제품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의 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듀프는 ‘현명한 소비’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소비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듀프 제품 선호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명품 듀프 제품의 경우 이미지를 우려한 명품 브랜드 한 곳이라도 문제를 삼기 시작하면 다른 브랜드들도 줄줄이 소송전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고 지적했다.

듀프(dupe)
영어 ‘듀플리케이트(duplicate·똑같은, 꼭 닮은)’의 줄임말로, 고가 브랜드 제품과 비슷한 기능·디자인을 가진 저렴한 대체품을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에는 단순 복제를 넘어 품질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명품의 대체품으로 뜻이 확장됐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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