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답답합니다. 숨이 막히는 듯하기도 합니다. 몸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생활하는 공간이 좁아서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제가 있는 사무실은 천장이 높고 바닥도 넓습니다. 햇볕도 잘 들어옵니다. 직장에 다닐 때 쓰던 비좁은 사무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답답합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에 물건이 쌓여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오가야 합니다. 함부로 다니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에 부딪혀서 작은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넓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넓을수록 더 많이 쌓입니다. 이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는 저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거의 모두 무생물입니다. 책, 서류, 철 지난 기기, 생활용품, 이름 모를 케이블,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보관해 둔 봉지와 상자. 바닥에도 있고, 책상과 테이블 위에도 있고, 선반 위에도, 책장 속에도 널려 있습니다. 최근에 산 물건보다 지난 세월에서 옮겨 온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사무실은 어느새 현재의 작업실이라기보다 지나온 시간이 자리를 차지하는 창고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것저것 쌓입니다.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물건만이 아닙니다. 기억, 책임, 마무리가 되지 않은 일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모입니다. 정리하려고 손을 뻗으면 그 물건에 붙어 있는 시간, 사람, 가능성이 함께 마음에 잡힙니다. 그래서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잘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더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물건이 물건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돈으로 산 물건에는 아까움과 후회가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에는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묻어 있습니다. 언젠가 쓸 것 같은 물건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함께합니다. 그런 것을 버리면 낭비한 사람, 관계를 소홀히 한 사람, 경솔한 사람이 되는 듯한 감정이 듭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종이 한 장도 귀하던 시절의 경험이 몸에 배어 남아 있습니다. 버리지 않는 것은 단순한 절약 습관이 아니라 생존의 지혜였고, 개인의 미덕이자 사회적 윤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여지책으로 버릴 종이에 붓글씨 연습을 하거나 좋은 문장을 필사해 음미하기도 합니다. 버릴 것을 한 번 더 살려서 활용한다는 마음입니다. 보람은 있으나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합니다. 이 방식으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
물건을 비우고 마음의 숨통 틔우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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