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거장 킬리안, 순간의 몸짓…'오늘'을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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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발레의 전설로 불리는 체코 출신 무용수 이르지 킬리안(78). 반세기 전 스물여덟에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킬리안은 하락기에 있던 무용단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렸다. 1973년부터 창작한 100여 개의 작품은 세계 유수 발레단에서 오늘도 공연되고 있다. 지금 노르웨이 오슬로와 네덜란드 헤이그는 온통 길리안으로 물들었다. '시간의 날개(Wings of Time)'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29일 오슬로에서 개막한 축제가 이달 22일까지 헤이그로 이어지면서다. 유럽에서 킬리안의 삶과 작품을 이 정도 규모와 시간을 들여 포괄적으로 담아낸 축제는 전무후무하다. 나는 '밀랍의 날개(Wings of Wax)'등 세 개의 작품에 노르웨이국립발레단 소속으로 함께했다. 공연이 끝나자 그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2인무를 잘 표현해 줘 고맙다'는 표현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영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르웨이국립발레단원 고영서가 오슬로에 마련된 킬리안 페스티벌 무대에서 킬리안의 작품 ‘잃어버린 땅’ 중 화이트 커플을 파트너와 연기하고 있다.  ⓒ요르그 비스너

노르웨이국립발레단원 고영서가 오슬로에 마련된 킬리안 페스티벌 무대에서 킬리안의 작품 ‘잃어버린 땅’ 중 화이트 커플을 파트너와 연기하고 있다. ⓒ요르그 비스너

아홉 살에 무용을 시작해 1956년 프라하국립극장 부설 발레스쿨과 프라하음악원을 거쳐 1967년 영국 로열발레스쿨을 졸업한 킬리안은 연극적 발레의 전성기를 이끈 안무가 존 크랭코의 눈에 띄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했다. 무용수로 활약하는 동시에 안무가로서 뿌리를 다졌다.

‘프라하의 봄’(1968) 이후 네덜란드로 망명한 그는 NDT 예술감독으로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창작 안무로 명성을 날렸다. 나는 모나코왕립발레학교에 다니던 열여섯 살 무렵 몬테카를로발레단이 그의 춤을 공연하는 모습을 봤다. ‘신들과 개들(Gods and Dogs)’ ‘아름다운 형태(Bella Figura)’ 그리고 ‘모자(Chapeau)’ 를 처음 본 순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발레를 저렇게 인간적으로 풀어낸다고?” 존경심이 생겼다. 그의 작품은 인간적인 안무다. 인간의 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명확하고 새롭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노르웨이국립발레단원으로 춤추는 영광과 행운을 누린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발레 안무의 ‘살아 있는 전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축제 개막 당일 안팎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노르웨이국립발레단원들은 킬리안의 마스터피스 7개를 무대에 올렸고, 어린 학생부터 노년의 관객까지 야외에서 플래시몹 댄스를 추며 열기를 더했다. 킬리안이 감독한 영화와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예술 장르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메인 극장에서는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된 7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프로그램 1의 테마는 ‘내일의 전날(Day Before Tomorrow)’로 이름 붙었는데, 여기에 속한 작품은 앞서 언급한 ‘밀랍의 날개’ ‘신들과 개들’ ‘아름다운 형태’ 등이다. 비교적 최근 작품들이다.

프로그램 2의 테마는 ‘어제의 다음 날(Day After Yesterday)’로 ‘잃어버린 땅(Forgotten Land)’ ‘이제 그만(No More Play)’ ‘작은 죽음(Petite Mort)’ 그리고 ‘시편의 교향곡(Symphony of Psalms)’ 등 킬리안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초창기 작품으로 구성됐다.

발레 거장 킬리안, 순간의 몸짓…'오늘'을 춤추다

두 테마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오늘’이다. 그래서일까. 킬리안은 축제 준비 과정 내내 단원들에게 당부했다. “이 순간을 살라(Live in the Moment)!”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평범한 문장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현재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매 순간 늙어가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을 주지시키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의 철학은 항상 같은 작품을 반복해 연습해야 하는 무용수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안무, 의상, 음악, 메이크업은 같을지언정 춤을 추는 나는 매번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그게 우리가 몸담고 있는, ‘답이 없는 예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킬리안의 당부 “이 순간을 살아라”

킬리안은 극장 내 삼각 관계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안무가, 무용수, 예술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관객 모두가 동등한 위치라고 말이다. 킬리안은 댄서 한 명 한 명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모든 무대가 끝날 때마다 직접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와 관객에게 인사했다. 이번 축제는 킬리안과 노르웨이국립발레단의 40년에 걸친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페스티벌을 추진한 이도 잉리 로렌첸 단장이었다. 한 안무가의 대규모 회고전은 춤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모이게 했다. 전체 공연 티켓이 빛의 속도로 매진됐고, 예술가들로 오슬로가 내내 북적였다. 마츠 에크,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세계 각지 예술감독의 면면도 볼 수 있었다. 오슬로에서 축제가 마무리되면 노르웨이국립발레단은 킬리안의 예술적 본거지인 네덜란드로 날아가 작품을 공연한다. 마침 한국에서도 6월 말 국립발레단을 통해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단다. 명작은 시공간에 상관없이 지구 곳곳에서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오슬로=고영서·노르웨이국립발레단 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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