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가장 밝은 별보다, 반딧불이 더 눈부신 이유 [조수민의 빛이 채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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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보이는 밤하늘 / 사진. ©조수민

별빛이 보이는 밤하늘 / 사진. ©조수민

놀랍게도 반딧불은 별보다 밝다

언젠가 마주했던 여행지의 밤을 기억한다.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숲속, 나무들 사이로 둥글게 열린 하늘에는 도시에서 볼 수 없던 별들이 가득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눈앞 풀숲으로 반딧불 하나가 느리게 떠올라 어둠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멀리 빛나는 별과 가까이 떠다니는 반딧불이 한 화면에 담긴, 오래도록 인상에 남은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날 밤 내 눈에 실제로 더 밝게 닿은 빛은 저 수많은 별이 아니라 눈앞을 스쳐 간 그 작은 반딧불이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우리는 빛나는 존재를 늘 ‘별’에 비유하니까. 최근 전 세계가 우리 가수들의 음악에 열광하고, 익숙한 얼굴들이 세계 시상식에서 축하를 받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유명한 사람들을 우리는 ‘스타’라 부른다. 밤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별과 같다는 의미에서다. 어울리는 비유다. 별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밝으니까.

밤하늘의 별은 실제로 얼마나 밝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북극성은 태양보다 2500배 밝다. 태양 하나도 그토록 밝은데, 그런 태양을 2500개 모아놓았다고 상상하면 그 밝기가 아주 조금은 가늠이 된다. 이렇게 압도적인 밝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서 가장 밝고 반짝이는 존재는 늘 별의 차지였다.

그런데 우리가 약하게 여기는 한낱 반딧불이, 그 북극성보다 밝다면 어떨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은 대결이지만, 놀랍게도 이는 과학적으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몇 해 전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왜 단순한 위로 이상이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거리가 밝기를 뒤집는다

반딧불이

반딧불이

빛을 다룰 때 아주 중요한 공식이 하나 있다. 바로 빛과 거리의 관계다. 어떤 면에 도달하는 빛의 양, 즉 조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풀어보면 단순하다. 광원에서 2배 멀어지면 밝기는 절반이 아니라 1/4로 줄고, 3배 멀어지면 1/3이 아니라 1/9로 줄어든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빛은 우리 짐작보다 훨씬 가파르게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별이 ‘얼마나 밝은가’를 말할 때, 그 별 자체의 밝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별이 나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가 함께 곱해져야, 비로소 내 눈에 닿는 밝기가 정해진다.

빛이 거리에 따라 퍼지는 역제곱 법칙 다이어그램 / 사진. ©조수민

빛이 거리에 따라 퍼지는 역제곱 법칙 다이어그램 / 사진. ©조수민

천문학이 별의 밝기를 두 가지로 나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별이 같은 거리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밝기인 ‘절대등급’과, 지구에서 실제로 보이는 밝기인 ‘겉보기 등급’이다. 북극성은 절대등급 -3.6의 눈부신 별이지만, 433광년이라는 거리를 건너 내 손바닥에 닿을 즈음의 빛은 약 1억 분의 3럭스, 눈으로는 감지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한 양으로 줄어든다.

그렇다면 바로 곁의 반딧불은 어떨까. 생물발광으로 빛을 내는 반딧불의 빛은 0.025루멘 정도로, 그 자체로는 보잘것없이 작은 빛이다. 이 작은 빛이 1미터 거리에 만들어내는 조도는 약 0.002럭스. 멀리 있는 북극성이 내 손바닥에 닿는 빛보다 약 6만 배나 밝은 값이다. 절대적인 밝기로는 비교조차 안 되는 둘이지만, ‘거리’라는 변수가 끼어드는 순간 결과는 완전히 뒤집힌다. 그날 밤 별보다 반딧불이 더 밝게 다가왔던 것은 착각도, 감상도 아니었던 셈이다. 우리가 별을 가장 밝은 존재로 기억하는 건, 어쩌면 그 압도적인 세기에 눈이 멀어 거리를 잊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빛을, 필요한 곳 가까이로

주방 상부장 아래 설치된 조명은 대상면과의 거리를 줄여 효과적으로 조리대를 밝힌다.

주방 상부장 아래 설치된 조명은 대상면과의 거리를 줄여 효과적으로 조리대를 밝힌다.

거리가 밝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 사실은 밤하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천장에 설치되어 내려오는 조명의 빛과, 우리 얼굴 가까이 내려온 펜던트 조명의 빛이 전혀 다른 이유가 그것이다. 최근 주방에서 상부장 아래에 조명을 다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내가 이 방식을 좋아하는 건 그림자가 줄고 분위기가 살아서만이 아니다. 조명과 조리대의 거리를 천장의 절반 이하로 좁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거리가 절반이면 같은 조명이어도 조리대를 4배 밝게 비출 수 있다. 같은 밝기를 원한다면, 필요한 에너지가 1/4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1900년대 중반,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는 수많은 가구와 조명을 디자인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르코(ARCO) 램프다. 천장에 펜던트를 달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펜던트 같은 빛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조명이다.

우아한 아치와 묵직한 대리석 받침의 조형미로 사랑받지만, 그 아치가 하는 진짜 일은 따로 있다. 천장에 구멍을 뚫지 않고도 긴 암(arm)으로 빛을 공간 한가운데까지 끌어와, 비추려는 대상 바로 위로 내려놓는 것이다. 광원을 대상에 가깝게 가져갈수록 작은 빛 하나로 큰 효과를 낸다는, 앞서 말한 거리와 조도의 관계가 우아한 곡선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좌] 아르코(ARCO) 램프  [우] 톨로메오(Tolomeo)

[좌] 아르코(ARCO) 램프 [우] 톨로메오(Tolomeo)

아르코 Floor Lamp

아르코 Floor Lamp

비슷한 결의 조명으로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톨로메오가 있다.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와 지안카를로 파시나(Giancarlo Fassina)가 디자인한 이 조명은 관절과 와이어 텐션으로 빛의 높이와 각도를 한층 정교하게 조절한다. 아르코가 공간의 중심을 잡는 거대한 오브제라면, 톨로메오는 친숙한 형태로 공간에 녹아들며 빛을 손 닿는 곳까지 가져오는 데 집중한 쪽이다. 그래서 크기별로 다양하게 만들어졌고, 한 공간에 여러 개를 두어도 어색하지 않다. 형태는 다르지만 두 조명이 하는 일은 같다. 빛을, 비추려는 곳 가까이로 데려온다는 것.

톨로메오 메가 플로어 램프

톨로메오 메가 플로어 램프

조도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이 사실은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을 때 앞사람은 환한데 배경은 유독 어둡게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고, 가로등의 최적 높이와 간격을 정하는 수학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미술관은 그림과 조명의 간격을 일부러 넓혀 강한 빛에 작품이 상하는 것을 막고, 반대로 식물 생장 조명은 광원을 바짝 붙여 작은 빛으로도 햇빛에 버금가는 조도를 만들어낸다. 빛은 절대적인 밝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가까이서 비추느냐가, 하늘의 별빛에서 우리가 머무는 방 안까지 똑같이 적용된다.

작아도 스스로 빛나는 것들에게

다시 ‘나는 반딧불’로 돌아가 본다. 노래 속 화자는 자신이 하늘의 별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반딧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눈부시기에 괜찮다는 가사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줬다. 나는 그 위로가 단지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위안이 아니라, 실제 측정 가능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크린 너머 저 멀리서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빛을 그들과 견주곤 한다. 별의 세기에 눈이 멀어 거리를 잊듯, 멀리 있는 이의 밝기에 압도되어 정작 내가 어디서 얼마만큼 빛나고 있는지를 잊곤 한다. 하지만 멀리서 반짝이는 별빛은 생각보다 우리 삶에 닿지 못하고, 그렇기에 쉽게 다른 별로 대체된다. 실제 우리 삶을 비추는 빛은 늘 가까이에 있다. 설령 작아 보여도 우리 곁에서 비추는 빛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를 별과 견주며 초라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당신이 누군가의 주변에 있는 한, 당신은 이미 그 사람에게 밤하늘 어떤 별보다 밝은 빛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반딧불이다. 작더라도 스스로 빛나는, 내 주변의 그 모든 빛들을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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