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관세 문제와 안보 문제를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한국에 방위비를 무려 아홉배, 열배로 올려야 한다는 폭탄 주장을 던졌는데요. 평소 트럼프 대통령의 지론이기도 하지만, 현재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그 무게가 과거에 비해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열린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한국이 방위비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두 가지를 엮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는데요. 한국이 부유한 나라라고 하면서 미국에 돈을 너무 적게 낸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 재건에 기여한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1기 정부에 한국에 30억달러를 내게 만든 것을 자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한국에 요구한 금액이 100억달러였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론 50억달러였습니다만 과장해서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니 “자국의 방위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금액도 꼽았습니다. 1년에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이것은 올해 우리나라가 내고 있는 금액(1조5000억원 규모)의 아홉 배를 좀 넘는 수준입니다.
또 주한미군이 4만5000명 머물고 있다고 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4만5000명이라고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2만8500명 정도이고 여러 번 이것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우리 정부도 하고 또 다른 경로로도 지적이 있었지만 바꿀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진 상황입니다. 특히 양국이 지금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서로 의제를 교환하고 있는데 방위비 청구서를 이렇게 꺼내드는 것을 무작정 무시하기도 어렵고요. 그렇다고 덜컥 들어주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차분히 논의하면서 딜을 만들어가고 싶지만, 정상회담이 너무 늦어지는 데 따르는 부담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 정부는 유효하게 타결되고 발효된 방위비 협정을 준수하며 이행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공개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