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의 수기나 회고담을 보면 미군이 참전하면 북한군 정도는 금방 물리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당연한 추측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던 미군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양군이 조우하자마자 미군은 형편없이 패배했다. 전투력 자체에서 북한군에 밀렸다. 심지어 낙동강 교두보 전투 당시 북한군은 이미 상당한 병력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병력에서 우위였고 화력과 제공권에서도 압도했다. 그런데도 유엔군은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긴 끝에 간신히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런 전쟁’의 저자 T R 페렌바크는 후퇴 과정에서 한국군이 미군보다 더 많은 북한군을 죽였다고 썼다. 제2차 세계대전의 최강 미군이 이런 수모를 겪은 데는 부대 편제와 훈련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 상당수가 야전 지휘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큰 문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장교들이 대거 전역한 반면 일본에 주둔한 미군의 주요 지휘관 자리에는 실전 지휘 경험이 부족한 장교들이 적지 않게 배치됐다. 이 같은 인사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애초에 주일 미군에는 야전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만 파견한다는 규정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미 2사단 23연대장 폴 프리먼 대령은 흥미로운 사례다. 그는 1929년 이래 참전은커녕 부대 지휘도 맡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 최고의 지휘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야전 경험이 지휘관 선발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것만으로 지휘 능력을 온전히 판단할 순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도는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뿐, 개인의 잠재력과 예외적 역량까지 재단할 순 없다. 법과 규정만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임용한의 전쟁사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황규인 기자의 베이스볼 비키니 DBR 사설 임용한 역사학자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법과 규정이 항상 옳지는 않다[임용한의 전쟁사]〈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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