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 기준에서 보면 프랑스 급식의 질은 높다. 한 달에 스무 끼를 먹을 경우 이 가운데 네 번은 채식 메뉴, 네 번은 생선 또는 가공되지 않은 고기가 포함돼야 한다. 성장기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매주 한 번 이상 채식 요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식의 의무 규정에 따른 것인데, 영양 면에서도 나무랄 것이 없다. 소금과 소스는 필요한 양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통제된다. 또 급식에 지속 가능한 식재료가 최소 절반 이상, 유기농 재료가 20% 이상 포함돼야 하는 규정도 있다.
프랑스 국공립학교의 급식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여부와 가격을 결정하는데, 급식비는 가구소득에 따라 10단계로 나뉘어 책정된다. 이에 따라 한 끼 가격은 최소 0.13유로, 최대 7유로(약 200∼1만1000원) 선이다. 정부가 사회복지와 공공서비스에 적극 개입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따르고 있는 나라에서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 것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국민처럼 우리 가정도 매년 소득 신고를 하면서 등급을 받고 있다. 문득 ‘같은 급식을 먹으면서 왜 누군가는 7유로를 내고 누군가는 0.13유로를 내는지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은 없을까?’ ‘소득이 노출돼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파리시를 예로 들면 가구당 소득을 가족 구성원 수로 나눈 값(Quotient familial)은 세무서에 신고한 소득액을 따르며, 이에 대한 지불도 세무서에 하기 때문에 학교는 부모 소득에 대해 알 방도가 없다. 저렴한 급식비를 내는 불우한 가정의 아이인지, 아니면 부유한 가정의 아이인지 친구들이나 교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급식비는 물론 보육료와 장학금, 주거 보조금, 문화·스포츠 활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 적용된다. 가난한 이를 위해 기꺼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부자의 의무라는 것에 대해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큰 불만 없이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물론 프랑스 급식 제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지역과 빈곤 지역 간 급식의 질 차이를 문제 삼는 이도 있고,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중간 계층은 지원에서 소외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역 축산업자들은 농산물보다 육류가 배제되는 것에 오히려 불만을 갖고 있으니 모두를 만족시킬 제도는 없는 듯하다.
언젠가 프랑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급식으로 가정식 비스트로의 풀코스 메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전식, 메인, 디저트, 유제품, 빵 등이 제공됐고, 최소 30분 이상의 배식 시간과 30분 이상의 식사 시간도 의무적으로 보장했다. 어릴 때부터 코스 요리로 제공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니 가정에서 식사를 할 때나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돼서도 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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