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진출 韓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열광하는 뉴요커들

“정말 훌륭했어요. 그것 말고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요.”
“한국에서 이런 뮤지컬을 만들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해졌어요.”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뮤지컬 중심지인 브로드웨이 한복판 벨라스코 극장. 오후 9시 한국의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끝나자 약 1000명의 관객은 동시에 일어나 기립 박수를 쏟아냈다. 10대 청소년부터 70~80대 노인까지 관객 구성 연령도 다양했다. 여성 관객 상당수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남성 관객 일부도 눈시울이 붉은 상태였다.

매일 저녁 50ｍ 이상 긴 줄

이날 벨라스코 극장 앞은 오후 6시부터 관객 줄이 50ｍ 이상 이어졌다. 인근 식당에서 일하는 니르 르바인씨는“매일 공연이 시작하는 오후 7시 전에 이 정도 줄을 선다”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1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인간의 감정을 배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부품마저 단종된 쓸쓸한 생활을 하는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를 만나며 위로와 사랑을 배운다.

빈자리 없이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공연 시작부터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재즈를 좋아하는 올리버가 인간으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냇 킹 콜(유명 재즈 가수)’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나, 올리버와 클레어가 러브모텔을 찾을 때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무대에 영어와 한글이 동시에 표기된 점도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올리버가 반려 식물을 한국어로 ‘화분’이라고 부르는 것도 관객에게 신선한 대목이었다.

공연이 끝나도 떠나지 않는 관객들

오후 9시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극장을 떠나지 않았다. 배우들을 만나 사인을 받기 위한 인파였다. 공연이 끝난 지 약 50분쯤 지나자 배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출입문에서 이어진 줄은 공연이 시작할 때보다 더 길게 이어져 있었다. 코네티컷주의 스탬퍼드에서 왔다는 벨라 피어몬트씨는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어느 한 장면만을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좋았다”고 답했다. 열린 결말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과연 클레어가 기억을 지웠는지 여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클레어를 연기한 중국계 미국인 배우 헬렌 J. 셴이 평상복 차림으로 극장을 나서자 관객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공연 프로그램 북을 내밀며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 열광적인 관객들의 반응에 놀란 행인들도 “무슨 뮤지컬이냐”며 “주말에 당장 예매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말 약 300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첫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한다’, ‘일 테노레’를 만든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매진 행렬이 이어진 공연은 2018년 열린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소극장 뮤지컬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했다. 이후 영어판 공연이 추진됐다. 2016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 뉴욕에서 낭독회 형식의 쇼케이스를 열었다. 당시 유명 연극·뮤지컬 제작자 제프리 리처즈의 눈에 띄면서 그와 브로드웨이 공연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10월 프리뷰 기간을 거쳐 11월 벨라스코 극장에서 오픈런 형태로 개막했다. 미국 공연문화 소식지 플레이빌 사이트에 따르면 프리뷰 기간 30만달러를 밑돌던 티켓 매출액은 개막 첫 주 46만달러, 둘째 주 59만달러 등으로 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2주 연속 100만달러를 넘겼다. 공연 전체 기간 평균 좌석 점유율도 높아져 93.31%까지 올라왔다.

외신들의 극찬도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공상과학의 유쾌한 외피를 입고, 완전히 독창적인 ‘인간적인 비애’를 은밀히 담아낸 작품이다”고 평가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6월 8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는 제78회 토니상 10개 부문에 올랐다. 작품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각본상, 음악상, 편곡상, 무대 디자인상, 의상 디자인상, 조명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 등이다. 토니상을 받은 첫 한국 뮤지컬이 탄생할지 주목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