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대부분의 대기업은 PPA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기업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재생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RE100 달성 목적뿐 아니라 가파르게 오른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체할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을 고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재생에너지 조달 방법 중 PPA는 한국전력(한전)을 통하지 않고 민간기업 간 계약을 맺어 전기를 공급받는 것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및 중개업자와 전기사용자(기업)가 10~20년 장기계약해 요금 변동성을 낮추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PPA는 계약을 체결하려면 금융 조달을 감안해 신용등급이 A+ 이상이 되어야 하기에 주로 대기업의 시장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RE100 협의체에 따르면, 지난해 PPA 계약은 누적 기준 1679MW로 전년 누적 계약 체결량 913MW와 비교했을 때 84% 증가했다. 전체 계약 중 한국전력이 중개한 제3자 PPA(18MW)에 비해 사업자·수요자 간 직접 PPA가 1661MW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발전원별로는 태양광이 1279MW로 가장 많았고, 조력(254MW), 풍력(124MW)이 뒤를 이었다.
PPA 제도가 시행된 2022년 이후 최근까지 산업용 전기요금은 일곱 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택용 요금과 인상 폭을 비교한 결과 2000년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주택용 요금이 42% 오르는 동안 산업용 요금은 227% 인상됐다.
기업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과 전력시스템에 대한 기업 의견’을 조사한 결과,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에 비해 ‘귀사가 느끼는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78.7%가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 요금이 높아짐에 따라 자가발전소를 세우거나 전력도매시장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등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방안을 시도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기업은 11.7%, ‘지금은 아니나 요금이 더 오른다면 할 것’으로 응답한 기업은 27.7%에 달했다.
에너지 IT 기업인 해줌 백진근 에너지신사업실 실장은 “최근 기업의 유휴 부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는 ‘온사이트 PPA’가 매우 많이 늘었다. 실제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비용이 30%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경제적으로 이득이면서도 탄소중립과 RE100을 달성할 수 있어 특히 화학·전자 계통 기업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백 팀장은 “기업 밖에 부지를 가진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오프사이트 PPA 같은 경우 아직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20~30원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보다는 고객사 요청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력 중개업 사업자도 증가 추세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조달에서 선호하는 방식은 발전원별로는 태양광, 계약 방식은 PPA다. 재생에너지재단이 주요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 43개사를 대상으로 ‘2025 재생에너지 시장 전망’에 대해 설문한 결과 가장 적극적으로 구매한 재생에너지원은 태양광이 74%로 압도적이었다. 풍력은 9%에 불과했다.
에너지 조달 수단은 PPA가 35%, 녹색 프리미엄이 19%, REC 현물거래가 16%, 직접투자가 12%였다. 평균 PPA 계약 가격은 kWh당 170~180원으로 나타났다.
2025년 올해 재생에너지 조달 시장은 전년 대비 더 호전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37%였다. 기업이 올해 적극 구매하려는 조달 수단은 PPA가 58%, 직접투자가 17%로 PPA가 훨씬 많았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대기업이 1차, 2차 밴더사까지 RE100을 권고 사항으로 교육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PPA를 찾다 보니 전력 중개업에 속속 뛰어드는 기업도 생겼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터를 닦아온 에너지 계열의 SK이노베이션 E&S와 GS에너지는 물론, 건설사와 금융사까지 뛰어들고 있다. 주로 모기업의 전력거래를 중개하면서 트랙 레코드를 쌓거나 재생에너지 전력 사업을 키우면서 이 분야에 뛰어드는 경우다.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 6개 계열사의 전력거래를 중개한 이력을 발판 삼아 새로운 국내 PPA 사업자로 발돋움했다. 현대건설은 PPA와 통합발전사업(VPP) 두 사업을 모두 진행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화신한테라와트아워는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화그룹과 금융사의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과 SK에코플랜트도 지난해부터 전력 중개 사업을 개시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PPA 관건은 ‘가격’...공공부문 역할도 커
최근에는 기업이 PPA를 하고 싶어도 재생에너지 공급처가 없어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재생에너지 현물가격이 뛰면서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PPA보다 현물시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현물시장 가격은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 오는 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더한 값으로 정해진다. 현재 현물시장 가격은 kWh당 130원(SMP)+80원(REC)으로 210원 수준이다. PPA 계약은 주로 180원대에 형성되어 있어 우선순위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또 중대 규모 전력거래에 필요한 규모의 사업자를 찾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여기에 송배전 동맥경화 문제로 신규 사업자 진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공급보다 수요가 큰 상황이다.
정우원 기업재생에너지재단 팀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대폭 높아지면서 기업이 경제성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따로 자료를 내지 않아도 수면 아래에서는 꾸준히 PPA 체결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다만 PPA가 늘어나면서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이 사업을 허가받은 부지를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 그 가격이 반영되거나, 전력 가격을 지난해보다 10원 정도 더 인상해 시작가를 높이면서 기업들이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올 상반기에 발표할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에서 전력(전환) 부문 유상할당 상향안이 구체적으로 결정되면 전기요금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생산기지 해외 이전(오프쇼어링)까지 고려할 정도로 생존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고 있는 RE100과 탄소중립 발전을 위해 재생에너지 구매 및 사용이 활성화되도록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출 필요도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제도)를 일몰하고, 경매 입찰을 실제로 실시하게 되면 재생에너지 가격이 조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와 동시에 투트랙으로 정부가 공공부문에서의 해상풍력 투자를 확대하면서 물량을 늘리면 공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가 생기므로 공공부문이 나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