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한 서울국제도서전…독자들에게 '믿을 구석'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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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6.18 16:03 수정2025.06.18 16:03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18일 개막한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솔 기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18일 개막한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솔 기자

"저희처럼 작은 출판사에게 도서전은 독자들을 만나 책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예요."

제주도에서 차이콥스키 출판사를 운영 중인 세르게이 차이코프스키 대표는 18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와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는 그는 3년째 도서전에 참가 중이다. 러시아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이야기를 담은 <엄마의 계획>, 해녀에 대한 그림책 <해녀리나> 등이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차이코프스키 대표는 "소규모 출판사의 경우 서점에 새 책을 입고해봤자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간다"며 "도서전은 여러 나라의 독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귀한 자리"라고 했다.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이 이날부터 오는 22일까지 닷새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17개국에서 출판사와 출판 관련 단체 530여 곳이 참여해 저자 강연회, 대담, 사인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주제는 '믿을 구석'으로, 고단한 현실에서 책이 안식처이자 힘이 되겠다는 의미다. 주빈국인 대만에서 천쓰홍 등 유명 작가들이 방한했다. '평산책방'을 운영 중인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독자 사로잡자" 출판사 간 경쟁

이날 도서전에는 입장 시작 시간인 10시 이전부터 인파가 몰렸다. 인터넷으로 사전 예매한 입장권을 수령하기 위한 줄이 행사장 입구 주변으로 수백m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올해 도서전은 인터넷 1차 얼리버드(조기 할인 판매) 티켓만으로 입장권이 매진될 정도로 일찌감치 관심을 끌었다. 정확한 수량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15만장이 얼리버드로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행사장 곳곳에서 등판에 '책'이라고 적힌 노란 티셔츠를 입은 안전요원들은 "질서를 지켜달라" "사전 예매한 분들만 입장 가능하다"고 소리쳐 안내했다.

관람객들이 행사장으로 밀려들자 각 출판사들은 이들의 발길과 눈길을 끌기 위해 각종 행사를 벌였다. 매년 도서전은 각 출판사들의 '마케팅 전쟁터'다.

조미현 현암사 대표가 현암사 설립 80주년을 맞아 '팔순 잔치'를 주제로 꾸린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에서 한복 차림으로 독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구은서 기자

조미현 현암사 대표가 현암사 설립 80주년을 맞아 '팔순 잔치'를 주제로 꾸린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에서 한복 차림으로 독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구은서 기자

올해 설립 80주년을 맞은 현암사는 아예 '팔순 잔치'를 주제로 부스를 꾸몄다. 조미현 현암사 대표는 한복을 차려입은 채 모형 떡과 과일이 차려진 잔칫상 앞에서 독자들을 맞았다. 조 대표는 "이번 도서전을 통해 '80년간 독자, 저자, 인쇄소와 제본소 등에게 받은 걸 돌려주자' '더 젊고 톡톡 튀는 출판사로 독자들을 만나자'는 생각을 했다"며 "1년 6개월간 행사를 준비했고 새 로고도 도서전에서 최초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현암사 캐릭터 '현암이'를 활용한 티셔츠와 가방 등 굿즈(기녀품)도 선보였다.

시공사는 공사장을 테마로 부스를 꾸리고 직원들이 작업용 조끼를 입은 채 독자들에게 책을 설명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출판사 이름을 듣고 건설 시공사를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고, 책도 건물도 똑같이 '짓는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다산북스는 오뚜기와 협업해 '마음의 양식당' 전시를 진행했다. "독자에게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오뚜기의 다양한 음식 이미지와 문학 문장을 연결하는 독자 참여 행사 등을 진행했다.

출판사들에게는 도서전 준비 과정 자체가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한다. 올해 도서전에 처음 참가한 사이드웨이 출판사의 박성열 대표는 "도서전 시기에 맞춰 신간을 2권 내놓았다"며 "독자들을 직접 만나 새 책을 선보일 생각을 하니 설렌다"고 말했다.

사유화 비판·현장예매 혼란도

도서전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책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믿을 구석'은 공공성. 영리화X 주식회사화X 사유화X." 도서전 행사장 일부 부스에는 이런 문구의 포스터가 붙었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이 주식회사 형태로 열렸는데, 출판사들 사이에서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이 도서전을 사유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출협이 주관하던 도서전이 주식회사로 전환한 건 정부와의 갈등 영향이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협은 도서전 수익금 정산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문체부가 경찰에 출협 이사진에 대한 수사의뢰까지 했다. 출협은 매년 받던 정부 지원을 거부하기로 하고 도서전을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했다.

이날 도서전 개막 직전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작가회의 등 9개 출판·사회 단체들의 모임인 '독서생태계 공공성 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윤 회장이 도서전을 공공의 이익이 아닌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본인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이 도서전의 의사결정 구조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주주로서 전체 지분의 70%를 차지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의 백지화, 도서전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논의 기구 구성, 정부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확대 등을 요구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붙은 '사유화 반대' 포스터. 구은서 기자

서울국제도서전에 붙은 '사유화 반대' 포스터. 구은서 기자

이례적으로 '현장입장권 없는 도서전'이라 온라인 예매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등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도서전 측은 올해 인터넷 사전예매가 인기를 끌자 안전을 이유로 입장권 현장판매를 하지 않았다. 비판이 일자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등 무료관람객에 한해서만 당일 입장권을 발행했다.

이날 손녀딸에게 그림책을 사주기 위해 도서전을 왔다는 김영수 씨(77)는 "5년째 매년 도서전에 오는데 작년처럼 행사장에 와서 입장권을 사려고 하니 뭐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며 "원하는 출판사도 찾기 힘들고 갈수록 행사가 젊은이들 위주로 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도서전 측은 참가사 부스 지도를 입장권 팔찌 QR코드를 통해 안내했다. 종이 팜플렛도 배부했지만 20대 관람객조차 "활자가 작아 알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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