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구순 거장이 ‘높은 해상도’로 담은 韓[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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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한국 사회의 ‘재현의 위기’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나는 한국 사회가 재현(再現·representation)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현이란 어떤 것을 다시(re) 제시하는(presentation) 일이다. 겪었던 일을 일정한 서사를 통해 전해 준다? 그것은 재현이다. 사실 겪었던 일 속에는 복잡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다시 제시했으니, 그것은 재현이다. 각종 여행기나 르포나 다큐멘터리도 재현이다. 어떤 현상이나 경험을 다시 제시한 거니까. 언론의 기사 역시 재현이다. 발생한 일은 복잡하기 짝이 없고 잡음이 가득한 법, 그래도 기자는 그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다시 전달한다. 그러니 그 기사는 재현이다. 한국 사회를 다룬 소설도 재현이기는 마찬가지다. 말이 간단해서 한국 사회지, 그 한국 사회라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가. 소설가는 그중에서 자신이 주목할 만한 것을 추려서 다시 제시한다. 따라서 그것도 재현이다. 세계 지도 역시 재현이다. 세계에는 한 장의 지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하고 축약해서 다시 제시하니, 세계 지도 역시 재현이다. 재현이 어디 신문기사나 소설이나 책이나 지도에만 있으랴. 선거를 통해 뽑힌 국회의원의 정치에도 재현이 있다. 대의민주주의(representitive democracy)나 정치적 대표(political representation)라는 용어에 영어로 재현이라는 뜻이 담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민의 뜻을 정리해서 제시하는 것 역시 재현이기 때문이다. 어디 국민의 뜻뿐이랴. 하느님의 뜻도 마찬가지다. 성직자가 하느님의 뜻이 이러저러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 성직자는 다름 아닌 재현 작업에 종사하는 중이다. 하느님의 뜻을 정리해서 제시하는 것 역시 재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현상 그 자체를 직면해 이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 누군가가 재현해 준 내용을 통해서 그 현상을 이해한다. 신문에 실린 사건 기사를 읽고 그 사건을 이해하고, 지도를 펴놓고 그 지역의 환경을 이해하고, 정치인의 주장을 듣고 국민의 뜻을 이해하고, 성직자의 설교를 듣고 신의 뜻에 다가간다. 그러니 재현이 얼마나 중요한가. 재현이 잘못되면, 사람들은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며, 그 잘못된 인식은 잘못된 감정을 낳고, 그 잘못된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동반한다. 20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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