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테니스 男단식 결승… 4-6, 6-7, 6-4, 7-6, 7-6 대접전
‘나달의 후계자’ 알카라스 역전승
“신네르와 결승서 자주 만나고 싶어”
‘빅4’ 시대 저물고 ‘양강시대’ 도래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프랑스오픈이 개막한 지난달 25일. 정장 차림으로 대회 주 경기장 필리프샤트리에코트에 들어선 ‘흙신’ 라파엘 나달(39·스페인)은 팬 1만5000여 명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은퇴식 행사를 가졌다.
나달과 함께 ‘남자 테니스 빅4’로 불렸던 로저 페더러(44·스위스), 노바크 조코비치(38·세르비아), 앤디 머리(38·영국)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이 중 현역 선수는 조코비치뿐이었다. 이 대회에서만 14차례 우승한 나달은 “이 선수들 때문에 코트에서 힘들었지만 경쟁은 즐겁기도 했다. 우린 최고의 라이벌이었지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랭킹 6위 조코비치는 올해 대회 4강까지 올랐지만 2001년생 얀니크 신네르(24·이탈리아·1위)에게 0-3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신네르와 결승에서 맞붙은 선수는 2003년생 카를로스 알카라스(22·스페인·2위)였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선수끼리 맞붙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빅4’의 시대가 저물고, 알카라스와 신네르 두 신성의 ‘양강 시대’가 도래한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올해 프랑스오픈에서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맞붙은 얀니크 신네르(왼쪽)와 카를로스 알카라스. 우승 트로피는 알카라스가 가져갔다. 파리=AP 뉴시스
두 선수는 9일 끝난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5시간 29분 동안 명승부를 펼쳤다. 원래 이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선 1982년 4시간 42분이 최장 경기 시간 기록이었는데 두 선수가 이 기록을 47분이나 연장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선수는 ‘나달의 후계자’로 꼽히는 알카라스였다. 알카라스는 신네르에게 처음 두 세트를 먼저 내줬지만 이후 세 세트를 내리 따내면서 3-2(4-6, 6-7, 6-4, 7-6, 7-6) 역전승을 거두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알카라스는 게임 스코어 3-5로 끌려가던 4세트 9번째 게임에서 0-40까지 밀렸다. 3포인트를 내리 따내야 경기를 이어갈 수 있는 ‘트리플 챔피언십 포인트’ 위기에 몰린 것. 프로 선수가 메이저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된 1968년 이후(오픈 시대)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이런 위기를 이겨내고 승리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알카라스는 기어이 승부를 파이널 세트까지 끌고 간 뒤 대역전 승리를 따냈다.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9일 끝난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5시간 29분에 걸친 혈투 끝에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한 뒤 대회 메인 코트인 필리프샤트리에 코트 바닥에 누워 있다. 파리=AP 뉴시스
알카라스는 그러면서 22세 1개월 3일인 이날 개인 다섯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나달 역시 22세 1개월 3일이던 2008년 7월 6일 윔블던에서 우승하면서 개인 다섯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을 남겼다. 알카라스는 “아마도 운명(destiny)인 것 같다”면서 “내 우상과 똑같은 기록을 남길 수 있어 크나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 “내가 신네르를 계속 이기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계속 노력해 신네르와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올해 호주오픈까지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3연승을 거둔 신네르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패하는 아픔을 맛봤다. 도핑으로 3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복귀한 신네르는 “오늘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알카라스는 우승 자격이 있다. 축하한다”고 말했다.1980년대 메이저대회 단식에서 7회 우승한 전 세계랭킹 1위 마츠 빌란데르(61·스웨덴)는 미국 TNT 방송에서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시대 이후 이런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오히려 페더러와 나달의 결승전보다도 나았다.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페이스로 경기를 이어갔다”고 평가했다. 알카라스의 우승으로 지난해부터 이날까지 열린 6번의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는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세 번씩 나눠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