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자연재해 대처·관리 과정 보여주는 비석, 국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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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국가유산청은 신라의 자연재해에 대한 대처 및 관리 과정이 새겨진 비석인 ‘영천 청제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영천 청제비 전경

‘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축조된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청못’ 옆에 세워진 2기의 비석(청제축조·수리비, 청제중립비)으로, 받침돌과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내용을 새겼다. 앞서 1969년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청제축조비와 청제수리비의 문구는 모양이 일정치 않은 하나의 돌 앞·뒷면에 각각 새겨졌다.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형태로 두 면의 비문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다. 청제축조비(앞면)는 536년(법흥왕 23년) 2월 8일 처음 큰 제방을 준공한 사실과 공사 규모, 동원 인원, 공사 책임자, 지방민 관리자에 대한 기록 등을 담고 있다. 서체는 예스럽고 비정형적이며 자유분방한 6세기 신라 서풍의 전형에 해당한다.

청제수리비(뒷면)는 798년(원성왕 14년) 4월 13일 제방 수리공사의 완료 사실과 함께 제방의 파손·수리 경과보고 과정, 수리 규모, 공사 기간, 공사 책임자, 동원 인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청제축조비와 같은 신라 고유 서풍을 계승했다. 청제축조·수리비는 신라사에서 홍수와 가뭄이 가장 빈번했던 6세기와 8세기 후반~9세기에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국가에서 추진했던 토목공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시사점이 크다는 평가다.

바로 옆의 청제중립비는 1688년(조선 숙종 14년) 땅에 묻혀 있었던 청제축조·수리비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을 담고 있다. 이 비석 역시 조선의 일반적인 서체를 따르지 않고 신라의 예스러운 서풍을 반영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축조 및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비석에 시기를 달리하는 비문이 각각 기록된 희귀한 사례라는 점과 조성 이래 현재까지 원 위치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부연했다.

청제수리비_798년
청제축조비_536년
청제중립비_1688년

국가유산청은 이날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 △‘자치통감 권81~85’,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목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목판’, △‘치문경훈 목판’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함께 알렸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은 1747년(영조 23년) 숙종 비 인원왕후 김씨의 회갑을 맞아, 존호(덕을 높이 기리는 뜻으로 올리는 칭호)를 올린 것을 축원하고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 옛 터에서 시행된 정시(국가에 경축할 일이 있거나 할 때 비정기적으로 시행되는 과거 시험)의 모습과 영조가 내린 어제시(국왕이 직접 지은 시)에 50명의 신하들이 화답한 연구시(여러 명이 함께 짓는 시)를 담은 작품이다. ‘영조실록’ 및 ‘승정원일기’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 작품은 총 8폭으로 구성돼 있다.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은 궁중 행사를 표현한 병풍 중 이른 시기의 사례이자 제작 시기가 명확한 기년작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경복궁 옛 터의 광화문, 근정전, 경회루 등이 상세히 묘사된 점에는 영조가 경복궁 옛 터를 중시했던 기조가 반영되어 있으며,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의 핵심 인물들이 연구시를 지은 것을 토대로 작품의 제작 배경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영조의 정치 철학과 국가 운영 방식을 시각적으로 담아낸 중요 자료다.

영남대학교중앙도서관 소장 ‘자치통감 권81~85’는 1434년(세종 16년) 편찬에 착수해 1436년(세종 18년)에 완료된 총 294권 가운데 권81~85의 5권 1책에 해당한다. 주자소에서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금속활자본으로, 현재까지 완질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사한 판본이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으나, 전해지는 내용과 수량이 많지 않아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
자치통감

함께 보물로 지정된 목판 4건은 청도 운문사가 소장 중이다. 국가유산청이 성보문화유산의 가치 발굴과 체계적 보존 관리를 위해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와 연차적으로 시행 중인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유산 일제조사’ 사업을 통해 2016년에 조사한 경상남도 지역 사찰 소장 목판 중 완전성, 제작 시기, 보존 상태, 희소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물로 지정했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목판’은 1515년(중종 10년) 조성된 목판으로, 총 33판 완질이다. 각선 선사의 주도 아래, 처호가 목판을 제작하고 최호가 글자를 새겨 만들어졌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고려 후기 승려 죽암에 의해 편찬된 불교 의식집으로, 수륙재 때 행하는 여러 의식 절차가 정리돼 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은 1588년(선조 21년) ‘원각경’에 해설을 더한 ‘원각경약소’를 토대로 조성된 목판으로, 총 104판 완질이다. 석헌 선사의 주도 아래, 도림이 글을 쓰고 지희가 목판을 제작한 후 인헌 등이 글자를 새겨 조성되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부처와 12보살이 주고받는 문답형식을 통해 대승불교의 사상과 체계적인 수행의 절차를 설명한 경전이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목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목판
치문경훈 목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목판’은 1588년(선조 21년) 조성된 목판으로, 총 37판 완질이다. 석헌 선사의 주도 아래, 도림이 글을 쓰고 지희가 목판을 제작한 후 의련 등이 글자를 새겨 조성되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고려 승려 지눌이 당 승려 종밀의 ‘법집별행록’에서 요점만을 초록한 ‘법집별행록절요’에 자신의 사견인 ‘사기’를 붙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라고 이름을 붙인 불교 저술서다.

‘치문경훈 목판’은 1588년(선조 21년) 조성된 목판으로, 총 90판 완질이다. 홍인 선사의 주도 아래, 도림이 교정하고, 종원이 목판을 제작한 후 법천 등이 글자를 새겨 조성됐다. 치문경훈은 송 승려 택현이 저술한 ‘치문보훈’을 원 승려 지현이 보편하고 명 승려 여근이 중국 역대 고승들의 경훈과 법어 등을 증보한 불서다.

청도 운문사 소장 4종의 목판은 전래되는 같은 종의 목판 중 시기가 가장 앞설 뿐만 아니라 완질의 목판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국가유산청은 “국보로 지정한 ‘영천 청제비’ 및 보물로 지정한 6건에 대해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행정의 자세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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