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나도 모르는 내 감정… ‘마음사전’에서 찾아보세요

6 hours ago 4

호감에도 ‘반하다’ ‘매혹되다’ 등… 단어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존재
내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마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보길

마음이 괴로울 때는 감정 상태를 정확히 표현할 단어를 찾는 과정을 통해 괴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 ‘쓸쓸함’ ‘무료함’ ‘공허함’ 등 정확한 낱말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고찰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마음이 괴로울 때는 감정 상태를 정확히 표현할 단어를 찾는 과정을 통해 괴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 ‘쓸쓸함’ ‘무료함’ ‘공허함’ 등 정확한 낱말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고찰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기말고사가 한창인 7월입니다. 아침 조회를 들어가면 조용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에 말을 선뜻 건네지 못합니다. ‘기운 내자, 시험 잘 보자, 너무 긴장하지 말자’라는 말들이 행여 공허한 잔소리로 들릴까 주저하다 보면, 입에 머금던 말들이 기화(氣化)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음을 잘 전달하는 언어를 배우고 싶어집니다.

학업으로, 친구와의 갈등으로, 속 시끄러운 고민들로 힘든 일상을 버티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요, 그런 것 같긴 한데요…’ 무언가가 불편하고 속상한데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어떤 것이 마음에 걸림돌이 되어 얹혔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 마음의 낱말들과 만나기

우리의 표현 방식은 언어와 행동입니다. 아무리 숨겨도 ‘삐죽’대며 행동으로 드러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곤 하지요.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내가 그렇지 뭐’ 하며 위축되고 맙니다. 우리 안에 꽉 찬 마음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 말이지요.

이럴 때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를 배우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아,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쓸쓸함, 무료함, 공허함, 평화’ 중 ‘무료함’이었구나”라고 알아 가면 마음 정리에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마음의 언어를 정리한 사전이 있습니다. 바로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2008년·마음산책)입니다. 김소연 시인은 이 책에서 마음의 낱말을 모으고, 감성과 직관으로 헤아린 것들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합니다.

● ‘호감’에 대하여 제 주변의 어떤 선생님들이 다정하고 현명합니다. 예리하면서도 따스합니다. 자꾸만 얘기를 나누고 싶고, 같이 일하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전의 ‘호감’ 카테고리에는 ‘존경, 동경, 흠모와 열광, 옹호, 좋아하다, 반하다, 매혹되다, 아끼다, 매력, 보은, 신뢰’가 있더군요.

그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떠올린 단어는 ‘반하다’와 ‘매혹되다’였습니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요?

“반하다: ‘반하다’라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 선택인 셈이다. (중략)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혹되다: ‘홀림’이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 ‘반하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하략)” 아하! 저는 매혹되었군요.

● ‘유쾌, 상쾌, 경쾌, 통쾌’를 구분해 보면

책 속 단어의 구분과 경계가 재미있어서 △유쾌 △상쾌 △경쾌 △통쾌의 차이를 밝혀 보는 모둠토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기말고사 같은 큰 파도가 쓱 지나간 자리에 공허와 게으름이 남을 때, 이런 수업을 하면 재밌습니다.

학생들은 ‘통쾌’를 제일 먼저 구분해 냈습니다. 뭔가 응징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 같아서 나머지와는 다르게 ‘복수’의 느낌이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상쾌’해지지만, ‘유쾌하거나 경쾌’하지는 않는다고 구분해 냈어요. ‘유쾌’는 유머가 붙어 있는 것 같고, ‘경쾌’는 활기찬 걸음걸이 등이 떠오른다고 했어요. 또한 ‘유쾌나 상쾌’는 내가 한 행동에서 스스로 느끼는 마음인데, ‘경쾌’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느끼는 마음 같대요.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모둠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사전을 볼까요?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중략)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유쾌해지고, 좋은 공간에 놓였을 때 상쾌해지며, 좋은 컨디션일 때 경쾌해지고, 지루한 장마처럼 오래 묵은 골칫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될 때 통쾌해진다. 나쁜 사람의 불행을 구경하며 우리는 유쾌하거나 상쾌하거나 경쾌해질 수는 없지만 통쾌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 통쾌하다는 것의 쾌감이 위험한 수위에서 찰랑대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1학기 수업에서도 다양한 마음 단어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같이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잘 모르겠는, 그냥 그런 것’을 보다 분명하게 알려주고 고찰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믿고 있기에, 이 책은 살 만한 인생을 위해 한 번쯤 읽어 두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