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골프를 기대하게 만든 서커스 골프 - US오픈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10 hours ago 1

J.J 스펀이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CC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미국) ㅣAP 뉴시스

J.J 스펀이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CC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미국) ㅣAP 뉴시스

J.J 스펀(35·미국)이  16일(한국 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컨트리클럽(파70)에서 열린 125회 US오픈에서 유일한 언더파 스코어 기록을 작성하며 첫 메이저 정상이자 PGA투어 2승째를 올렸다. 스펀은 마지막 홀에서 30 걸음 내외의 장거리 버디 퍼팅에 성공하여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를 두 차 차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참가 선수 중 유일한 언더파(-1) 우승이며, 마지막 라운드 전반 홀에서 5오버파를 기록하고도 US오픈을 우승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125회 오크몬트 대회는 US오픈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US오픈은 1만 명이 넘는 전 세계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가 참가하는 지구에서 가장 큰 골프대회다. 4대 메이저 대회 중 상금도 가장 많다. US오픈은 1895년에 열린 첫 대회부터 디오픈을 염두에 두었다. USGA(미국골프협회)가 정한 우승 상금은 150달러였다. 같은 해 열린 제35회 디오픈 우승 상금이 30파운드(당시 환율로 146달러)였음을 고려할 때, US오픈은 시작부터 디오픈을 능가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링크스 중심의 영국 골프는 행운이 많이 작용하지만, 미국 골프는 행운의 영향을 최소화해 보다 공정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잘 친 샷에는 보상을, 못 친 샷에는 징벌이 부여되어야 했다. 그것이 페어웨이, 퍼스트 컷, 세컨드 컷이라는 구분이 등장한 이유다. 똑바로 공을 보낸 골퍼는 다음 샷을 편안한 상태에서 쳐야 했고, 그렇지 못한 골퍼는 러프에서 치는 벌을 받아야 했다.

원래 골프 룰은 페어웨이와 러프를 구분하지 않았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자연에서 양 떼가 풀을 뜯어 먹은 곳이 페어웨이, 뜯지 않은 곳이 러프다. 정확히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기에 규정을 다르게 적용할게 수 없었다.

현대 골프에 등장하는 세컨드 컷 러프는 인위적이다. 초식동물은 놀랍도록 풀을 짧게 뜯기에 잔디가 짧은 지역은 얼마든지 있지만, 잔디가 자라다가 6cm나 10cm로 일정하게 잘리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 상태의 잔디는 오크몬트의 세컨드 컷 러프처럼 밀도가 촘촘할 수 없다. 골프 코스의 세컨드 컷은 많은 관리를 필요로 한다.

세컨드 컷 러프라는 인위적 요소를 골프에 도입한 것은 골프의 공정성을 위해 좋은 생각이었고, USGA가 골프 발전에 이바지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강화되면서 골프 코스의 셋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마침내 오크몬트의 US오픈 셋업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뭐든지 지나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법이다.

러프의 길이는 13cm까지 길어졌고, 페어웨이 폭은 25야드까지 좁혀졌고, 그린 스피드는 15피트까지 올라갔다. 300야드를 넘는 비거리를 치면서 25야드 폭 안으로 공을 떨어트리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행운, 스포츠가 아니라 서커스처럼 보였다. 거리를 포기하고 아이언으로 티샷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핀을 공략하기 위해서 롱 아이언을 써야 하는데, 딱딱하고 빠른 그린을 롱 아이언으로 공략할 수 있을까?

153회 디오픈이 열리는 로열 포트러시 던루스 코스의 전경. 사진 제공ㅣ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

153회 디오픈이 열리는 로열 포트러시 던루스 코스의 전경. 사진 제공ㅣ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

오크몬트 골프는 미국 골프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미국 골프의 정신을 벗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다시 행운에 너무 민감해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골퍼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파인허스트 넘버2에서 벌어진 지난 대회가 재미있었는가, 오크몬트에서 벌어진 이번 대회가 재미있었는가? 이번 대회는 스폰의 마지막 버디 퍼팅을 제외하고는 주목해서 볼만한 장면이 없었다.

파인허스트와 오크몬트는 스코틀랜드 링크스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결정적인 면에서 다르다. 파인허스트는 인공적인 세컨드 컷 러프가 없다. 그것이 골프 코스 설계의 거장 도널드 로스의 뜻이었다.

도널드 로스처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중시한 또 다른 설계자로 해리 콜트가 있다. 도널드 로스의 대표작이 파인허스트 넘버2라면, 해리콜트의 대표작은 올해 153회 디오픈이 개최되는 북아일랜드의 로열 포트러시다. 올해 US오픈을 보면서 해리 콜트의 걸작이자 자연의 걸작인 로열포트러시의 던루스 골프 코스가 자꾸만 생각났다.

로열 포트러시는 순수한 링크스 코스이기 때문에 행운이 관여하지만, 오크몬트의 행운과 로열 포트러시의 행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오크몬트 행운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고, 로열 포트러시의 행운은 자연에 의해 단조 된 것이다. 사람이 만든 행운에 의존한 오크몬트 골프는 서커스처럼 보였다. 반면에 자연이 만든 행운에 노출되는 골프를 우리는 오리지널 골프라고 부른다. 125회 US오픈의 서커스 스타일에 실망했기에 153회 디오픈의 오리지널한 스타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골프: 골프의 성지에서 깨달은 삶의 교훈’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Copyright © 스포츠동아.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