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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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6.20 07:54 수정2025.06.20 07:54

몸에 썩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열량과 염분 함량이 높은, 자극적인 배달 음식을 계속 시켜 먹는다. 시간 낭비인 걸 알면서도 하루 종일 SNS를 들락날락하며 '좋아요 수'를 체크한다. 사 놓고 안 입은 옷, 안 쓰는 물건이 쌓여 있는데도 불필요한 소비를 계속한다. 심지어 심각한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서도 마약과 도박이라는 강한 자극에 심취한다.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다. 이 풍요 과잉의 시대에 왜 인간은 끊임없이 채우면서 허전함을 느끼는가.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는 이유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가짜 결핍>은 그 원인을 진화적 뿌리에서 찾는 책이다. 미국 네바다대 저널리즘 교수인 마이클 이스터가 2년간 진화심리학, 뇌과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며,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 나선 여정의 기록물이다.

저자는 삶을 망가뜨리는 습관의 뿌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핍의 뇌'에 있다고 진단한다. 인간의 뇌는 생존에 필수 요소였던 자원(식량, 정보, 힘, 소유물, 시간, 쾌락 등)이 희소했던 시대에 진화했다.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과거 식량 탐색 행위는 도박과 비슷했다.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찾지만, 언제, 어디서, 얼마나 찾을지는 늘 불확실했다. 여기에는 '기회의 발견', '예측 불가능한 보상', '즉각적 반복 가능성'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저자는 이를 '결핍의 고리'라고 규정한다. 저 멀리 사냥감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기회의 발견). 이때 식량을 얻을 확률은 매우 변동적이다. 막상 다가갔는데 허탕을 칠 수도 있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실한 사냥감을 얻을 수도 있다(예측 불가능한 보상). 인간은 이런 행동을 매일, 거의 하루 종일 반복했을 것이다(즉각적 반복 가능성). 그러면서 결핍의 고리에 빠지는 방향으로 행동을 강화해 왔다는 것이다.

과거 생존을 위해 최적화됐던 우리 뇌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그대로다. 오래전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든 행동 양식이 이제는 삶을 망가뜨리는 나쁜 습관을 형성하는 트리거가 된 셈이다.

이 책에선 멀쩡한 비둘기도 도박꾼으로 만드는 실험을 소개한다. 심리학자 토마스 젠탈은 비둘기에게 두 가지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첫 번째 게임에선 비둘기가 불빛을 쪼면 두 번에 한 번(50%) 좋아하는 간식 15개가 주어졌다. 반면 두 번째 게임에선 비둘기가 불빛을 다섯 번 쫄 때마다 한 번씩 간식을 받았다. 행동의 20%만 보상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단 조건이 있었다. 두 번째 게임은 보상이 간식 20개로, 첫 번째 게임(15개)보다 컸다는 점이다. 다만 보상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는 예측 불가능했다.

최적 섭식 이론에 따르면, 동물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식량을 얻으려 애쓴다. 그렇다면 더 많은 간식이 보장된 첫 번째 게임을 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불과 몇 라운드만에 비둘기들은 보상받을 확률이 낮은 도박성 게임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무려 96.9퍼센트였다. 똑같은 현상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됐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이 비둘기들을 야생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게 한 다음 다시 같은 실험을 진행했더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도박 요소가 없는 첫 번째 게임을 골랐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자신이 선호하는 자극 수준이 있는데, 자극이 이보다 낮아지면 추가로 자극을 찾는다고 한다. 비둘기는 야생의 삶에서 접할 법한 형태의 대체 자극을 받았기에 도박성 게임을 선택할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었다.

자극이 부족한 채로 새장 속에서 살아가는 비둘기처럼 지나치게 풍요로워진 인간도 자원을 얻는 일이 너무 쉬워져 버렸다. 이 때문에 자극이 부족한 삶을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소비 행위로 채우려고 애쓰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이러한 뇌의 취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소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를 옭아맨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소개한다. 해답은 다소 뻔하게 느껴진다. 명상, 자연 속 운동, 느린 독서, 공동체 활동, 인간관계 등을 통해 도파민을 찾기보단 평온한 과정을 누리자고 말한다.

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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