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위의 위쪽(상부)에 암이 생긴 환자는 위를 모두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암이 있는 상부만 잘라내고 식도와 연결하면 되는데 음식 역류가 심해 환자들이 일상생활하는 데 큰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박도중 서울대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사진)는 복강경으로 암이 있는 부분만 잘라낸 뒤 음식이 지나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이런 부작용을 해결했다. 이 치료법은 2019년 세계 위암 수술 표준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박 교수는 “조기에 발견해 암 부위가 작은데도 위를 모두 잘라내 고통받는 환자를 돕기 위해 수술법을 도입했다”며 “위 기능을 남기는 데다 부작용도 해소해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세계적인 복강경 수술 권위자
박 교수는 위암 환자의 수술 부위를 최소화해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돕는 외과 의사다. 배에 작은 구멍만 뚫고 기구를 넣어 진행하는 복강경·로봇 위암 수술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그에게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의료진만 400여 명에 이른다.
위암은 크게 위쪽에 생기는 상부 위암과 가운데 생기는 중부, 아래쪽에 생기는 하부 위암으로 나뉜다. 상부 암은 크기가 작아도 상당수 환자가 위를 없애는 전절제수술을 받았다. 음식을 먹으면 식도를 지나 위로 들어가는데, 위의 윗부분을 넓게 도려내면 위까지 내려간 음식이 다시 식도로 넘어오는 역류 부작용이 심해서다. 박 교수는 “상부 위암만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 중엔 고통이 너무 심해 아예 위를 떼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위 상부만 잘라낸 뒤 식도와 남은 위를 잇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이중통로 문합술’을 도입했다. 배를 크게 여는 개복 방식으로 이 수술이 처음 이뤄진 것은 50여 년 전 일본에서다. 하지만 환자의 수술 부담이 커 잘 활용되지 못했다. 박 교수가 복강경으로 수술 부담을 줄인 뒤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단일공 수술로 흉터 줄여
박 교수팀은 2023년 복강경 이중통로 문합술을 받은 위암 환자와 위를 모두 자른 환자 138명의 수술 성적을 비교하는 연구 결과를 학계에 발표했다. 위 상부 3분의 1 정도에 조기 위암이 있던 환자들이다. 이중통로 문합술을 받은 환자와 전절제수술 환자의 역류성 식도염 발생률은 2.9%로 두 그룹 간 차이가 없었다. 수술 후 2년 생존율도 두 그룹이 비슷했다. 환자의 신체·사회 기능 점수는 이중통로 문합술 그룹이 더 높았다.
위를 모두 잘라내면 비타민B를 제대로 합성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극심한 빈혈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상당수는 주기적으로 비타민B12 주사를 맞는다. 위를 일부만 잘라낸 환자는 이런 비타민B 합성 능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중통로 문합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비타민B 보충량은 0.4㎎, 전절제수술 환자는 2.5㎎이었다. 박 교수는 “상부 위암 환자의 부분 절제를 위한 표준 수술법을 구축하기까지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며 “이중통로 문합술 연구로 결과를 입증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했다.
부분 절제술은 위를 많이 남기는 수술이다 보니 남은 위에 암이 재발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박 교수팀은 조기 위암에만 제한적으로 이 수술법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엔 복강경과 로봇 등 최소침습 수술을 할 때 구멍을 하나만 뚫고 하는 ‘단일공’ 수술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선 첫 단일공 위암 수술을 집도했다. 그는 “구멍을 많이 뚫는 수술법보다 흉터가 적은 데다 회복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다”며 “수술방에 들어가는 인력도 줄일 수 있어 관련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이 암 위험 낮추는 데 중요”
박 교수는 ‘기능 보존’과 ‘최소 수술’에 초점을 맞춰 수술법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엔 수술 후 회복 속도를 높이기 위한 회복 향상 프로그램(ERAS) 도입을 위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20여 개 표준 프로토콜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의사는 물론 영양사, 간호사 등이 힘을 모아 운동과 식습관까지 환자 회복을 포괄적으로 돕는 방법이다. 박 교수는 “환자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금식 기간을 줄이고 통증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위암 조기 진단을 돕기 위해 혈액 속 암 DNA 조각을 찾는 조기 진단 키트 개발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내 위암 수술 성적은 세계 최고다. 해외 의사들이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많이 찾는 이유다. 박 교수는 2014년 바쁜 시간을 쪼개 세계적 의학출판사인 스프링거의 <위 수술 교과서> 저자로 참여했다. 후학을 양성하고 최대한 수술법을 많이 알리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해외에선 상부 위암 수술은 여전히 70~80%가량이 전절제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박 교수가 조기 위암 환자를 위한 새 수술법을 도입한 뒤 수술을 포기했던 환자가 새 삶을 찾은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위를 모두 잘라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한 20대 환자는 박 교수에게 수술받은 뒤 암 진단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암과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박 교수가 환자에게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40세 이후엔 2년마다 위암 검사를 해야 한다”며 “술 담배를 많이 하거나 가족 중 위암 환자가 있다면 1년마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약력 ▷1998년 서울대 의대 졸업
▷2007~2019년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2012~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메모리얼슬로안캐터링암센터 연수
▷2019년~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