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나머지 절반에게도 인정받으려면… 3파(派)를 멀리하라

5 days ago 11

국민 상당수 ‘대통령 이재명’이라는 현실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상태
강경파·이념파·지역파 멀리하고
“뜻밖이네” 반응 이끌 온건·합리 행보 이어지면
거부감 큰 만큼 더 큰 박수로 바뀔 수 있어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대선 이후 뉴스와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는 못 꺼내게 한다. ‘대통령 이재명’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다.

역대 대선에서 어떤 유력 후보를 안 찍은 사람들이 그 후보에게 품는 적대감의 강도·농도를 측정할 때 후보 이재명에 대해서만큼 비(非)지지자들의 적대감이 큰 경우는 없었다.

전체 투표자 중 49.49% 즉 1731만 명이 김문수 이준석에게 표를 줬다. 이 중 상당수는 이재명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또는 어차피 이재명이 이기는 선거라 해도 득표 격차를 가능한 한 줄여야 폭주를 덜할 것이라는 절박감에서 던져진 표다.

이 대통령이 국민 절반에겐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나머지 절반에겐 혐오 대상이 된 이유는 누구나 안다.

하나는 개인적 신상, 인성 문제다. 피선거권 박탈형이 사실상 확정된 사람이 변칙·우회적 수단으로 권좌에 올랐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국민이 절반에 달한다. 정직이 거짓말을 이기고, 정도(正道)가 변칙을 이긴다는 가치관이 일그러졌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많다.

국민 절반에겐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문제가 나머지 절반에겐 용납하기 힘든 흠결로 여겨지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둘째, 이 대통령의 이념적 성향과 국정 방향에 대한 불신이다. 이는 정치인 이재명을 오랫동안 둘러싸고 지원해온 세력들에 대한 불신에 근거한다.모두의 지도자여야할 대통령이 국민 절반으로부터 심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불행으로 시급히 치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성에 대한 평가, 범죄 혐의로 인한 거부감은 당장 해결할 길이 없다. 범죄 혐의를 없애주는 법을 통과시킨다해서 불신이 사라질 것도 아니고, 형수욕설 같은 과거의 일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거부감은 길게, 크게 보면 차차 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즉 “예상 밖이네?”라는 반응이 나올 만한 국정 사례가 쌓여가고, 온건하고 소통이 원활한 국정 운영이 이어지면 거부감이 컸던 만큼 오히려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 공선사후를 지키는 결정들이 나오면 불신은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한쪽은 감옥 한쪽은 권좌’인 극단의 담장 위를 걷던 시절 생존을 위해 사법부 등 국가 시스템을 공격하고 법을 바꾸려 했던 시도들을 다 거둬들여야 한다. 어떤 포장을 해도 국민의 눈엔 본질이 다 보인다.

결국은 우려를 기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등 돌린 국민의 마음을 녹이는 길인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재인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3파(派)를 멀리하면 된다.

그 3파는 강경파, 이념파, 지역파다.

첫째, 강경파. 어느 시대에나 권력이 창출되면 충성 과시에 혈안이 된 강경파들이 달라붙어 아부 경쟁을 벌이기 마련이고 결과는 역사가 선명히 보여줘 왔다. 정권을 망칠 강경파가 누군지 대통령 본인이 잘 알 것이다.

둘째, 이념파. 국민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해 좌파 성향 시민단체 등과 가깝게 지냈다는 걸 안다. 그런 사람들에게 얹혀서 빛의 속도로 변하는 21세기 펄펄 나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가겠는가.

특히 문재인처럼 외교안보를 좌파 이념적으로 접근하려 하면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는 ‘한국의 좌파 정권에 속아 두 번이나 헛걸음하는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변칙적이고 돌발적인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미국은 대선 직전부터 주한미군 유연성 문제를 계속 띄웠다. 4500명 철수설도 돈다. 이게 의미하는 바를 놓치면 안된다. 한번 삐끗하면 나라 운명이 휘청일 수 있다. 주한미군 역할과 위상에 변화 기미가 보이면 자본과 사람이 빠져나간다. 국가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는 이재명 정부가 조금이라도 자유 진영을 실망시키는 노선을 걸으면 문재인 때 실점한 것까지 다 바가지를 씌울 태세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국내외 신망이 높은 정통 외교관 출신 국가안보실장으로 외교안보는 믿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듯했으나 6인회 멤버 출신 자주파 대부를 국정원장에 임명해 우방에 헷갈리는 시그널을 줬다. 이미 정권 내부에선 강성 좌파들이 온건 그룹 출신 인사들을 상대로 공격에 나섰다. 외교부 장관 임명이 늦어지는 것도 이 맥락이라고 한다.

이념 편향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자주파, 동맹파를 산술적으로 배분해 양쪽에 배치하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확고한 철학으로 방향을 정해줘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경제에서도 골동품 이론으로 실패의 선례를 다 보여줬다. 이 대통령은 시장을 잘 알고 정책경험도 많이 해봤으니 어떻게 하면 실패하고 성공하는지 알 것이다.

셋째, 지역파. 민주당 정권의 기반이 호남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 호남을 위한다면 성공한 정권이 되어야 하고 그걸 위해선 호남정권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지역편향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이 정권은 국민 절반의 강한 거부감 속에 출범했다. 하지만 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앞서의 세 대통령이 모두 처참한 성적을 냈으며 특히 전임자는 건국 이래 가장 질 낮은 행태를 보이다 쫓겨났다. 게다가 ‘이재명’이란 이름에 대한 기대치는 워낙 낮다. 조금만 잘해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임을 의미한다.

국민 절반의 눈에 이 대통령은 ‘개인적 흠결’을 다 씻어내지 못한 채 권좌에 오른 인물이다. 3파에 의존하며 “우려했던 대로”라는 반응이 나올 길로 간다면 여느 대통령보다 몇 배 강한 질타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반면 거센 반대 속에 시집온 며느리가 잘하면 더 귀염 받듯이 조금만 잘해도 더 큰 박수 속에 성공할 수 있다. 그 길은 강경파에 귀 내주지 않고, 이념파에 휘둘리지 말고, 지역에 빠지지 않는 것, 그 세 가지를 지키는 것이다. 강을 건널 때는 배가 필요했을지 몰라도 이젠 배를 버리고 말을 타야 한다.

이기홍 칼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HBR insight

    HBR insight

  • 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