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어머니와 한국, 일본 귀화… 되돌아보는 장훈의 일생

1 week ago 12

2010년 한국 프로야구 LG와 넥센 경기 시구자로 나선 장훈. 동아일보DB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한국과 일본 역사의 그늘진 교차점을 극복한 삶. 최근 별세한 재일동포 일본 프로야구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의 인생은 한국과 일본 어느 한쪽 중심으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상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5세 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의 누나를 잃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화상을 입어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는 일본에서 ‘투혼의 배트’라는 자서전을 냈는데 관련 내용이 국내에서 ‘일본을 이긴 한국인’(평단문화사)으로 번역 출간됐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프로 생활을 “피를 말리는 불안”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이를 이겨 나갔다고 적었다. 그것은 국가관 이전의 생존 본능이었다. 장훈은 강한 민족의식을 지녔었다. 그가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데뷔했을 때 구단주가 외국인 출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그를 양자로 들이려 했으나 어머니의 불호령으로 무산됐다. 극빈 속에서 그를 지키고 기른 어머니를 그는 평생 극진히 모셨다. 어머니의 강한 민족의식은 그에게 평생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프로야구 첫해 퍼시픽리그 신인왕 후보에 올랐을 때, 1962년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 경쟁을 할 때도 그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불리해질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기자들의 투표로 신인왕과 MVP를 차지했다. 장훈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에 눈을 뜨면서 도약했다. 그는 자신을 보러 오는 팬들을 위한 책임을 자각했고 타율 관리를 위해 일부러 경기에 빠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밤 300개 이상의 스윙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가 일본인의 마음 깊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은 1975년 12월 일본 최고 인기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전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설레었다. 그러나 자이언츠를 후원하는 일본 재계 거물들의 모임이 있었고 그중 일부가 반대했다. 거대 기업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이었던 대만계 일본인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자이언츠에서 활동 중이었는데 성격이 강한 장훈이 왕정치와 불화를 일으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계의 또 다른 거물인 노무라증권 회장의 보증으로 자이언츠에 입단할 수 있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장훈은 결국 일본 최고위 핵심층에서 인정받았다. 자이언츠에 입단한 그는 개인기록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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