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거래 주시하는 국세청
세금 폭탄 피할 '증여의 기술'
30대 김 모씨는 최근 국세청 등기우편으로 '납세자 권리헌장'을 받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헌장은 국세청이 김씨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신이 어떻게 10억원에 달하는 고액 전셋집에 살고 있는지를 소명(설명)하라는 자료 요구까지 받았다. 부모로부터 전세금 지원을 받는 등 불법 증여가 의심된다는 취지였다. 5년 전 김씨의 아버지는 이 아파트를 제3자인 이 모씨에게 팔았다. 이와 함께 아들(김씨) 이름으로 전세계약도 체결했다. 이씨로부터는 시세에서 전세금을 제외한 가격만 매도금으로 받았다. 사실상 아버지가 아들의 전세금을 대준 셈이다.
김씨는 "전세 보증금은 세무조사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아버지가 증여 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수년 전 내역을 어떻게 소명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전세금 대비 소득이 미미해 소명할 길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 최 모씨(36)도 올 들어 국세청 자금 출처 조사를 받았다. 그는 형으로부터 수십억 원대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취득했다. 그리고 이번엔 모친(어머니)에게 이 집을 전세로 시세보다 비싸게 임대해줬다. 국세청은 이런 거래도 어머니가 아들에게 증여하면서 신고하지 않은 사례로 본 것이다.
이 같은 전세 관련 세무조사는 매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별다른 직장과 소득이 없는 박 모씨는 50억원짜리 고가 아파트를 취득했다가 올해 세무조사 통보를 받았다. 국세청은 수혜를 본 자식의 소득 규모와 친인척의 갑작스러운 현금흐름을 상시로 추적한다. 이에 따라 박씨의 부친이 고액의 배당금과 상가 매각 대금으로 50억원을 마련해준 정황을 포착했다. "기준도 예외도 예고도 없다." 최근 세무 업계가 국세청의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를 두고 한 말이다. 올 들어 소득과 지원 금액에 상관없이 세무조사가 급증해 가족 사이에 부동산 거래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작년까지 부동산 관련 불법 증여를 이유로 조사하는 강남권 고가 아파트는 10억원 이상, 부모와 자식 간 거래에선 3억원 이상이 '보이지 않는 선'이었다. 이 금액 이상만 조사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이런 선 아래에서도 세무조사 통보를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세무조사가 급증한 주된 이유로 국가 세금수입(세수) 부족과 세무 공무원 '인센티브 제도' 등을 들고 있다. 먼저 세수와 관련해선 '삼성전자 등 대기업 법인세 급감→일반인 과세 추징 강화 요구→국세청 비정기 조사 증가→자금 출처 소명 요구 급증'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제대로 일하는 세무 공무원을 독려한다는 취지로 '세금 징수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올해 초 국세기본법이 개정됐다. 세무 공무원은 징수금 또는 승소금액의 10%까지 받을 수 있다. 자연스레 세무조사를 늘릴 유인책이 된다. 이에 따라 납세자들 사이에서는 국세청이 일반인에 대한 세무조사 기준선을 대폭 낮춘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세무 업계에서는 "세무당국의 세금 추징에 일종의 '기술'이 들어간 만큼 자산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단 암묵적으로 통용됐던 증여 관련 면세 기준을 3억원 이상이 아니라 2억1700만원으로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세 지원과 관련해 차용증을 썼을 때 이 금액까지는 용납될 가능성이 높으며 부모 역시 소득세를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본적으로 증여와 관련해 수혜자로 지목받는 자식들은 자신의 5년간 소득과 부동산 관련 자산(매수 혹은 전세가)의 금액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 도구는 각각 자금조달계획서와 차용증이 된다.
박민수 더스마트컴퍼니 대표는 "전세 보증금 지원은 사회 통념과 국세청 행정 효율성을 고려해 대부분 세무조사 없이 넘어갔었다"며 "부모 자식 간에 직접적 금전 거래가 없더라도 거액의 현금이 갑자기 생기면 이를 증여로 보고 추징할 수 있으니 가족 간이라도 차용증은 무조건 써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 급감 후폭풍…세무조사 불문율 깨져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 대상은 고가 주택을 매입하거나 고액 전세를 사는 사람들 가운데 자금 출처가 뚜렷하지 않은 '탈세 혐의자'다.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특정 시기를 정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탈세 의심 정황이 농후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시로 자금 출처를 밝힌다"고 전했다.
부모 등 직계존속이 자녀에게 증여한 금액 규모가 10년간 5000만원을 넘으면 증여세를 신고·납부해야 한다. 주택 구입 자금은 물론 전세 보증금도 해당된다. 국세청은 전세 보증금을 부모 등 친인척에게서 지원받은 세입자 가운데 편법 증여가 의심되는 사람에 대해 2013년부터 세무조사를 실시해왔다.
국세청은 과세 정보와 주택 취득 시 제출하는 자금조달계획서,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의 정보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조사 대상자를 선별한다. 2019년 금융회사가 FIU에 보고해야 하는 '고액현금거래보고(CTR)' 기준금액이 기존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내려갔다. 업계에서 "한 번에 1000만원 넘게 인출하면 국세청이 다 알게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고액 현금 거래를 했다고 바로 조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FIU는 고액 현금 거래 내역을 축적했다가 자금 흐름에 이상 징후가 있다고 판단하면 혐의 거래로 간주해 국세청이나 수사기관에 거래 내역을 전달한다.
2023년 기준 국세청이 FIU 정보를 활용해 조사에 나선 건수는 1만1585건에 달한다.
이처럼 자금 이동 기준이 강화된 이후 5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세무조사는 증가하는 구조다. 세무조사는 크게 정기 조사와 비정기 조사로 나뉜다. 이 중 최근 업계에서 급증했다고 보는 비정기 조사는 무신고처럼 납세자가 스스로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부동산 거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혐의가 있는 경우 등의 사유로 진행된다.
정기 조사에 비해 세무 공무원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다. 인센티브도 있는 만큼 조사 기준을 낮춰 추징이 적극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세금 부과·징수·송무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세무 공무원에게는 연간 최대 2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포상금은 징수금 또는 승소금액의 10% 이내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과도한 해석"이라며 "탈루 혐의액 하한이나 인원 등 기준을 따로 정해놓은 적이 아예 없다"고 답했다.
종합적인 공조에 따라 국세청은 고액 전세입자의 자산·지출·소득(PCI) 분석을 통해 탈루 정황을 포착한다. 통상 5년 기간의 소득과 지출, 자산을 분석해 조사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금은 차용증에 공증까지 받아야
납세자들은 주택 매매와 관련해 자금조달계획서를 잘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을 살 때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자세하게 적는 것이다. 법인이 주택을 살 때 그리고 실제 거래가격이 6억원 이상인 주택을 매수할 때 주택 취득 자금조달계획서 작성 대상이 된다.
주의할 점은 투기과열지구에 소재하는 주택을 매수하는 때는 거래가격과 관계없이 모두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025년 현재 서울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용산구 등이다. 여기서는 자금조달계획서와 함께 관련 증빙을 모두 제출해야 한다.
박 대표는 "특정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다. 소득 능력 대비 지나치게 비싼 부동산을 구매하면 조사가 들어온다"며 "이런 고액 거래는 100% 소명이 불가능하다. 차라리 증여세를 일부 부담하고 증여하거나 일부는 자녀와의 금전대차거래를 통해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자금조달계획서를 잘 작성해도 주택 매매 이후 자금 출처 조사가 진행된다면 차용증이 가장 큰 도움이 되니 꼭 작성해놓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차용증을 쓴다면 처음 돈을 빌릴 때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조사를 시작하면 세무당국에서 언제 차용증을 썼는지를 우선적으로 물어보기 때문이다. 세무서에서 나온다고 하니 부랴부랴 거짓 증서를 만들었다고 의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증을 받아놓는다면 가장 확실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 우체국 내용증명이나 차용증서 첨부용 인감증명 발급 기록 등도 도움이 된다.
차용증에는 빌리는 금액과 상환일, 상환 방법이 명시돼야 한다. 상환일이 없거나 너무 먼 미래라면 세무당국이 증여로 보기 쉽다. 대개 3~5년이 적당하다는 평가다. 혹시 정해진 상환 날짜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다시 차용증을 써 계약을 갱신하면 된다.
빌린 돈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려면 이자율과 이자 지불 방법도 명확히 해야 한다. 세법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 특수관계자가 주고받는 돈의 기본 이자율을 연 4.6%로 정하고 있다. 이자를 매달 지급할지, 1년에 한 번 지급할지도 적어야 한다. 상환 기간을 너무 길게 잡거나 상환 만료일에 한 번에 주겠다고 하면 증여로 보이기 쉬우니 피하는 것이 좋다.
계좌 내역 등 자금 사용처에 대한 증빙도 철저히 갖춰놔야 한다. A세무사는 "주택 매매나 전세 계약 이후 10년 정도는 증빙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 좋다"며 "부모와 자식 등 관련자 모두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현금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계좌이체로 현금을 넘겨주면 내역이 고스란히 계좌에 남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현금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른바 '엄카'로 불리는 '엄마 카드'로 매달 생활비를 보조받는 경우도 있다. 세무 전문가들은 "자금 출처 조사가 시작되면 모든 현금흐름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결국 증여로 잡힌다"고 조언했다.
[문일호 기자 / 손동우 기자 / 전경운 기자 / 김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