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姓 물려받으면서 제사 음식은 며느리 몫?[이용재의 식사의 窓]

1 week ago 20

이용재 음식평론가 명절이 다가오니 음식 생각이 난다. 추석에는 콩송편을 필두로 토란과 다시마를 넣은 탕국 등을 먹었다. 삶은 계란을 함께 눌러 켜가 아름다운 돼지머리 편육이 빠지지 않았고 다식과 산자도 있었다. 잣을 동동 띄운 식혜와 호두 곶감말이를 올린 수정과도 빠지면 섭섭했다. 명절 음식들이 그리운 것이냐고? 그렇지는 않다. 워낙 큰 영향을 받았기에 기억에 각인돼 때가 되면 조건반사처럼 떠오를 뿐이다. 채 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명절도 음식도 마냥 좋아서 충남의 친가에 내려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10대로 접어들며 음식 뒤의 현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풍성한 음식은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인가. 할머니와 유일한 며느리인 어머니였다. 알전구 한두 개만 희미하게 빛나는 재래식 부엌에서 할머니는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음식을 준비했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는 어머니가 합류해 함께 쉴 새 없이 일했다. 오죽하면 어머니는 자식이 다 큰 뒤에도 ‘고개 하나 넘어가면 친정인데 보내주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죽어라 음식을 준비한다고 남자들이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남자 따로, 여자 따로 상을 놓고 밥을 먹었는데 할머니는 늘 밥공기를 손에 들고 식사했다. 참다 못한 어머니가 “어머니, 상에 공기 올려놓고 편하게 드세요”라고 권해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는 반찬만 골라 식사를 마쳤다. 그런 식사가 끝나고 나면 곧 누군지도 모를 할아버지의 손님들이 들이닥쳐 먹고 마셨으니 수발 또한 할머니와 어머니가 들었다. 이처럼 착취에 가까운 성편향적 취사노동의 현실을 목도하며 나는 제례 폐지론자가 됐다. 물론 우리 집안 남성들도 마냥 손을 놓고 놀지만은 않았다. 밤도 까고 과일도 다듬었다. 하지만 애초에 음식을 할 줄 몰랐으니 조리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일은 없었다. 제례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간소하게 지내면 된다’고 반응한다. 언론에서도 명절만 되면 비슷한 취지의 기사를 내보낸다. 하지만 겪어봐서 모를 수가 없다. 간소한 차례도 분명 일이라 품이 들며, 준비 또한 결국 남성 아닌 여성이 주도한다. 따라서 아무리 간소해져도 부담이 여성에게 돌아가는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성들이 나서야 한다. 차례든 제사든 아예 없애 부담을 뿌리 뽑거나, 도저히 조상을 볼 면이 서지 않아 그럴 수 없다면 직접 장도 보고 음식도 준비해 제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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