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없는 게 당연해진 결혼식… 듣기 힘들어진 어른의 한마디[2030세상/박찬용]

1 week ago 10

박찬용 칼럼니스트 10년 전인 2016년, 친한 친구가 결혼했다. 나는 사회를 맡았다. 결혼식장이 있는 부산에 전날 도착해 하룻밤을 자고 식장에 여유 있게 도착했는데, 주례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모두가 불안해하던 가운데 주례 선생님은 결혼식 시작 직전에야 도착했다. 모두가 조급해하는데 정작 본인만 차분했다. 그는 내게 세 번쯤 접어 꼬깃꼬깃해진 쪽지 한 장을 건네고 주례석으로 올라갔다. 펴 보니 왠지 조악하게 적힌 그의 이력이었다. 무대 앞에 선 주례 선생님의 퍼포먼스는 놀라웠다. 그는 분명 내 친구 부부를 처음 보는 듯했는데, 마치 20년은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이야기를 건넸다. 알고 보니 그는 직업 주례인이었다. 주례가 끝나자 그는 업무를 마친 프로답게 홀연히 사라졌다. 내 기억 속 주례 있는 결혼식도 그때가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주례가 있는 결혼식을 본 기억이 없다. ‘주례 멸종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운 지인들의 결혼식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젊은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 다시 결혼이 유행이라 결혼식이 많아졌는데, 이제는 주례가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게 특이한 상황이 됐다. 지난달 결혼한 30대 초반 친구들에게도 물었다. 주례가 있는지, 주례를 세울 생각은 해봤는지. 그들 역시 주례도 없고 그것을 떠올려 본 적도 없었다. 주례가 없는 이유를 묻자 내심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몇 달간 여러 젊은이에게 물어본 결과, 주례가 있는 결혼식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교회 결혼식이었다. 왜 주례가 없을까? 결혼식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싫어서일까? 아닌 것 같다. 나는 축가에만 네 팀을 부른 결혼식도 봤다. 주례의 연설이 싫은 걸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축사만 네 차례인 결혼식도 봤다. 신랑 측과 신부 측 친구가 각각 두 명씩이었다. 돈 문제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신부가 옷을 세 벌씩 갈아입는 결혼식에도 주례는 없었다. 그냥 주례와 주례사를 쓸모없는 절차로 여기게 된 모양이다. 결혼식은 결혼이라는 엄중한 약속을 선포하는 행사다. 그 약속에 관한 말씀을 듣기 위해 어른을 모신 것이 주례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96년 스포츠 스타 방수현의 결혼식 주례사로 했던 “사랑이 혼인의 약속을 지켜 주지 않고, 혼인의 약속이 사랑을 지켜 준다”는 말이 한 예다. 지금의 결혼식은 결혼의 기쁨과 환희를 나누는 파티가 된 것 같다. 그런 자리에는 역시 주례가 어울리지 않는다. 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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