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보다 인공지능(AI)이 낫다.’ AI에 대한 공포는 이 같은 문장으로 요약된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특이점’(singularity)이다. 기술이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해 현생인류의 힘으로는 이해하거나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순간.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처음 언급한 단어지만 2005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책 <특이점이 온다>로 대중화됐다.
커즈와일은 당시 “2029년에는 기계가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하고, 2045년에는 인간과 기계가 완전히 융합되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공언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예측은 급진적이라고 평가받았고 일부는 조롱했다. 하지만 2022년 등장한 챗GPT 이후 그가 그렸던 특이점은 빠르게 현실이 돼가고 있다.
커즈와일이 예언한 AI 시대를 눈앞에 두고 20년 만에 그의 새로운 책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가 출간됐다. 국내판 감수는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가 맡았다.
커즈와일은 원래 공학자였다. 10대 때부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진학해 AI 분야 권위자인 마빈 민스키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텍스트·음성 변환기술 등을 발명했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와 세계 최초의 신디사이저를 개발하기도 했다. 1999년 미국 기술 분야 최고 영예로 꼽히는 국가기술훈장을, 2001년 레멜슨-MIT상을 받았고 2002년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1세기 에디슨’이란 별명도 있다.
커즈와일은 이번 책을 통해 <특이점이 온다>에서 내놓은 자신의 예측을 거듭 강조하면서 미래를 낙관한다. 그 근거로 ‘수확 가속의 법칙’을 제시한다. 컴퓨팅 같은 정보 기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저렴해진다는 법칙인데, 모든 발전은 그다음 단계의 발전을 더 수월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기술과 함께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문제 해결력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 발전에 따라 생겨날 각종 혼란은 과도기로 해석한다.
AI는 인간의 경쟁 대상이 아니라고 커즈와일은 말한다. 인간이 기계보다 ‘낫다’거나 ‘못하다’는 평가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봤다. 특이점이란 책의 부제대로 ‘인류가 AI와 결합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2030년대에는 인간이 생물학적 수명의 한계인 120세를 뚫게 될 것이고 인간 감각에 신호를 입력하는 나노봇을 통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우리 신경계에 직접 연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기계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일론 머스크가 2016년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인간 뇌에 칩을 심어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걸 떠올리면 지금도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니다.
커즈와일이 무속인처럼 미래상을 명쾌하게 그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 수 있다. 특이점에 관한 이론적 설명과 현재 상황 진단, 특이점이 불러올 ‘존재’에 대한 고찰 등을 살피는 데 초반부터 책 대부분을 할애한다. 전반적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태도는 안일하게 읽힐 수 있다. 하지만 AI 시대를 맞아 존재 가치를 고민하는 인간이라면 외면하기 힘든 책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