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블록이 아닌 철학을 팔았다…레고가 써내려간 성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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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는 닌자고 등 인기 캐릭터를 개발해 팬층을 넓히고 있다. 강원 춘천 레고랜드코리아에서 닌자고 복장을 한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경DB

레고는 닌자고 등 인기 캐릭터를 개발해 팬층을 넓히고 있다. 강원 춘천 레고랜드코리아에서 닌자고 복장을 한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경DB

1932년 덴마크 빌룬의 작은 목공소로 출발한 레고는 한 세기에 걸쳐 놀이 문화를 바꾼 브랜드로 불린다. 단순히 ‘장난감 메이커’라고 말하기엔 레고가 이룬 것이 너무나 많아서다. 최근 민음사에서 출간한 <레고 이야기>는 좋은 브랜드가 위대한 브랜드로 나아가는 전략을 기업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레고의 연대기를 따라가되 기업 회고록을 넘어 독자가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파고들게 한다. 저자가 창업자 가문의 승인을 받아 써 내려간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레고그룹 내부 기록물을 점검하고 오너 인터뷰를 담아 레고의 정신을 충실하게 담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책마을] 블록이 아닌 철학을 팔았다…레고가 써내려간 성공신화

책은 레고가 창업 시기부터 3대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그에 따른 여정은 어땠는지 보여준다. 목공소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과감한 투자를 했는데, 이게 레고 브릭의 출발점이었다. 그의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는 시대 흐름에 따라 목공소의 헤리티지로 불리던 나무 장난감 사업을 과감히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나무 장난감 사업을 하던 고트프레드의 동생 게르하르트도 회사에서 내보낸다. 1958년 고트프레드는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단단하게 결합되는 브릭을 세상에 내놓으며 빌룬의 목공소를 ‘레고 중심 회사’로 확립했다.

책에 따르면 고트프레드는 레고를 장난감으로 규정짓지 않았다. 브릭의 본질에 초점을 두고 장난감이 아니라 무한한 확장성과 가능성을 지닌 ‘시스템’으로 레고를 정의했다. 장난감으로 규정짓지 않으니 어른도 레고를 마음껏 경험했다. 이는 레고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매김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세상에 몇 안 되는 브랜드로 미국에서 ‘디즈니’가 꼽힌다면 덴마크에는 ‘레고’가 있다. 삶에서 가치 있는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로 거듭난 레고는 곧 세계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점한다. 레고는 독일을 거점 삼아 유럽을 제패했으며 마침내 대서양 건너 미국 시장도 넘본다. 그러나 레고에 미국 진출의 첫걸음은 시련 투성이었다. 미국에 발을 내딛으려 샘소나이트와 협력 관계를 맺었지만 두 기업의 사업적 본질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자는 처음부터 두 기업이 윈윈하기 어려운 한계점이 있었으며 이 실패를 통해 레고는 브릭에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레고 창업자(뒤쪽부터), 그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인 고트프레드, 손자이자 3대 회장인 켈.  레고 제공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레고 창업자(뒤쪽부터), 그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인 고트프레드, 손자이자 3대 회장인 켈. 레고 제공

이후 레고는 ‘레고 스타워즈’ ‘레고 해리포터’ 시리즈 등으로 콘텐츠 기업과 협력하며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다. 브릭과 결합한 이야기의 힘을 믿은 회사는 이후 미니 피규어, 놀이공원(레고랜드), 닌자고와 같은 자체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놀이 문화를 앞서 내다보고, 그에 따른 의사결정을 빠르게 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다. 이처럼 저자는 책을 통해 ‘레고는 현대 놀이 문화를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레고는 운영 측면에서도 변화를 꾀한다. 가족 기업으로서 가부장적인 의사결정만으로는 회사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2004년 레고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외부 최고경영자(CEO)를 처음 임명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쓴소리와 객관적 시선에서 긍정적인 교훈을 얻은 레고는 이후 해외 CEO, 능력이 출중한 여성 임원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지속 성장의 발판을 닦았다.

최근에도 레고는 도전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토이저러스와 같은 장난감 전문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지는 상황에 레고 스토리를 늘리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레고의 본질’을 소비자가 체험할 수 있다면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레고 팬들은 새해가 될 때마다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한다. 인기 상품이 단종되기 전에 구매하려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레고 이야기>는 레고가 파는 것은 블록이 아니라 그들의 독보적인 가치와 전략이라는 것을 수차례 강조한다. 사업에 인사이트를 얻고 싶은 비즈니스 전략가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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