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기계가 건반을 누르자, 인간은 한계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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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카메라가 처음 등장하자, 화가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지만 인물화보다 추상 미술 갈고 닦아 자동 피아노-AI 등 기술 발전이 예술을 새로운 범주로 확장시켜 ◇언캐니 뮤즈/데이비드 헤이두 지음·노승영 옮김/364쪽·2만2000원·까치 게티이미지뱅크·챗GPT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 여자아이 같은 모양새의 ‘무언가’가 단상에 오른다. 그것의 이름은 조이. 조이는 관객들이 유명인의 이름을 외치자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본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이렇게 썼다. “그녀는 모종의 수수께끼 같은 방법으로 예술가의 팔동작을 수월하게 흉내 낸다. 전문가의 폼으로 크레용을 들고, 대가의 자세로 이젤에 진짜 선을 긋고….” ‘조이’는 사람이 아닌 자동인형이다. 이 광경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손뼉 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놀랍게도 ‘조이’는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탄생했다. 그가 남긴 그림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엔 조잡하다. 21세기 휴머노이드와 또 다른 점은,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가 조이를 직접 조작했다는 것이다. 100여 년 전 사람들과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엔 묘한 공통점도 있다. 기계가 인간의 몸짓을 완벽히 모방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와 별개로 그 결과물을 보고 느껴지는 원인 모를 불쾌함이나 인간이 기계에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편함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화려한 그림을 그리고 순식간에 음악을 만들어내는 오늘. 미 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이자 저명한 음악 비평가인 저자는 수 세기 동안 펼쳐진 역사적 장면을 통해 기계와 예술의 관계가 단순한 ‘대체’나 ‘위협’이 아니라 파격과 융합을 끌어낸 매혹적인 공존과 협력의 연대기였음을 보여준다. 책 제목의 ‘언캐니(Uncanny)’는 인간을 닮은 기계가 인간 예술의 경계에 다가섰을 때 피어나는 매혹과 불안(불쾌한 골짜기)을 가리킨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오늘날엔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순수한 예술 도구들도, 한때는 예술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악마적 기계로 배척받았다. 19세기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깊은 절망과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사진이 등장하며 초상화를 의뢰받아 그리는 역할에서 해방된 화가들은 도리어 인상주의와 추상 미술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 기술은 인간의 예술을 멸종시키는 게 아니라 창작의 범주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는 ‘뮤즈’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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