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영어판 공연이 미국 최고 권위상 ‘토니상’에서 6관왕 달성이란 기염을 토한 이후 작품의 탄생기에 대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지난 9일 뉴욕에서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연출상·극본상·음악상·남우주연상·무대 디자인상 등 6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한국 뮤지컬 역사를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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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곡가 윌 애런슨(왼쪽), 작가 겸 작사가 박천휴가 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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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사진=NHN링크) |
이 같은 낭보 이후 특히 주목받은 곳은 우란문화재단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최태원 SK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 문화예술단체인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우란문화재단은 2014년 9월부터 작곡가 윌 애런슨과 극작·작사가 박천휴의 창작 작업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개발된 ‘어쩌면 해피엔딩’은 각각 2016년과 지난해 한국과 미국에서 정식 공연을 시작했다.
“윌(윌 애런슨)과 휴(박천휴)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창작 작업에 온전히 몰두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성대로 작품을 써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지원 사업의 지향점이었어요.”
우란문화재단 프로듀서(2012~2022) 출신인 김유철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은 13일 이데일리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기획 개발 작업을 회고하며 이 같이 밝혔다.
당시 우란문화재단은 별도의 공모 과정 없이 윌 애런슨과 박천휴를 지원 대상 창작자로 선택했다. 김 본부장은 “윌과 휴가 각각 작곡가와 작사가로 참여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초연(2012) 관람이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사와 음악의 조화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두 사람의 창작 재능과 시너지, 근면 성실함과 소통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창작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김 본부장은 “해당 지원 프로그램의 특징은 미국의 민간 비영리 단체들이 창작자들을 돕는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작품이 아닌 창작자를 지원했다는 점이었다”면서 “그 당시엔 국내에서 거의 유일했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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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2017년 공연 장면(사진=대명문화공장, 네오프러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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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아 라이브러리컴퍼니 대표(왼쪽)와 김유철 본부장(사진=이데일리DB) |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원이 시작된 지 약 1년 만인 2015년 9월 국내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렸다. 김 본부장은 “두 사람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기에 빠른 시일 내에 개발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어판 개발도 처음부터 함께 이뤄졌으며, 2016년 6월과 10월 각각 뉴욕에서 리딩 공연과 송라이터 쇼케이스가 열렸다. 이를 통해 현지 유명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면서 브로드웨이 입성 길이 열렸다.
김 본부장은 “두 사람 모두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어판 개발도 함께 이뤄졌던 것”이라며 “브로드웨이 진출 같은 큰 목적을 두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프리뷰 공연으로 첫발을 뗀 브로드웨이 공연은 개막 초반 어려움을 겪었으나 평론가들의 호평 속에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작 반열에 올랐다.
김 본부장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랑과 이별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작품이라 브로드웨이 시장에서도 통한 것 같다.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재즈 편곡을 가미하는 등 넘버 구성을 다듬어 현지화한 것도 성공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라이브러리컴퍼니가 제작을 맡아 지난해 12월 초연한 ‘고스트 베이커리’를 통해 ‘윌휴’ 콤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스트 베이커리’는 제과점에서 해고당한 뒤 허름한 빵집을 연 주인공 순희가 그곳의 옛 주인이었던 유령과 불편한 동업을 이어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로맨틱 판타지 코미디물이다.
그는 “‘고스트 베이커리’ 또한 영어판 대본이 존재한다. 앞으로 공연을 잘 다듬어나가면서 영어 버전 공연까지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이 한국 뮤지컬의 무대 확장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