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조용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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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03 06:01 수정2025.05.03 06:01

[편집장 레터] 조용한 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는 등 반(反)ESG 행보를 보이자 일부 기업이나 금융사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이름을 슬그머니 내려놓았습니다.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등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 넷제로은행연합(NZBA)을 탈퇴하기도 했죠. NZBA는 2021년 출범한 UN 산하 기후 이니셔티브로, 2050년까지 은행 대출 투자 등 금융 포트폴리오의 탄소중립이 목표였습니다. 국내 역시 신한은행이 올해 초 기존 ‘ESG기획실’ 명칭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기획실’로 변경하는 등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ESG 관련 투자는 조용히 덩치를 키우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펀드명에 ESG를 포함하면 자금 유입 확률이 높아진다는 전언도 있었죠.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이 지난 4월 10일 발표한 ‘펀드명: ESG 관련 변화와 투자 흐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4년 중반까지 EU 역내 펀드의 ESG 관련 명칭 사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ESG 관련 용어를 사용하는 펀드 비중이 2015년 이전 3% 미만에서 2024년 중반 약 9%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글로벌 ESG 금융자산이 2030년 35조 달러(약 5경35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2024년 30조 달러(약 4경3100조 원)였던 ESG 자산이 연평균 2.6%씩 완만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ESG 규제 교착, 미국 시장 위축, 글로벌 무역 리스크 등이 모두 반영된 추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혁신 산업으로 분류하는 기후 기술, 인공지능(AI), 반도체, 소재 기업은 ESG 펀드에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술 기반 산업이 실제 탄소감축과 순환경제 혁신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저탄소에너지 전환 투자는 처음으로 2조1000억 달러(약 3021조 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전력망 구축, 전기차 및 배터리가 성장을 주도한 것입니다.

당선 전부터 반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며 ‘드릴, 베이비, 드릴!’(더 많은 석유를 파자)을 외친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ESG 시계’가 느려진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에도 ESG 투자가 조용히 보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경ESG〉는 5월호 커버 스토리 ‘ESG 자금, 혁신 산업에 몰린다’에서 “ESG는 장기 생존 전략인데 한국은 아직 이를 유행어처럼 소비하고 있다”는 박상인 서울대 교수의 쓴소리를 전하며, 조용히 전진하고 있는 국내외 ESG 투자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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