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T ‘무한도전 프로젝트’ 10주년
학년-학과 무관 관심 주제 선정해 1년간 학교서 예산 받아 연구개발
농가 돕는 대화형 AI 서비스 개발… 배달앱 등 실제 창업 성과 내기도
“사실 제가 우주에 가고 싶어서 연구하는 겁니다.”
지난달 말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만난 이창현 씨(기계로봇공학과 23학번)의 솔직한 한마디에 회의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는 다른 학부생들과 팀 ‘불맛’을 꾸려 액체 로켓 엔진 테스트베드 개발에 도전한다. 만약 발사까지 성공하면 국내 학부생 수준에서는 인하대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이 씨는 “보시다시피 저는 키가 너무 크고 체력이 부족한 편이라 우주비행사에 적합하지 않다”며 “지금 비행기를 아무나 탈 수 있듯이 누구나 저렴하고 쉽게 우주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 GIST엔 ‘무한도전’ 있다GIST에 로켓공학과 관련된 학부가 없는데도 이 씨가 로켓 개발을 시도할 수 있는 이유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GIST의 학부생 프로그램 ‘무한도전 프로젝트’ 덕분이다.
무한도전은 ‘공식 딴짓 활동’으로도 불린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팀을 꾸리고 주제의 제한 없이 목표와 계획을 세워 1년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올해는 총 57팀이 신청해 약 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8팀이 선정됐다. 팀당 200만∼300만 원의 예산이 지원되며 올해 11월까지 활동을 마무리하고 발표회나 전시, 공연을 통해 결과물을 공유한다. 프로젝트 성공·실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25학번 신입생으로만 구성된 ‘도파밍’ 팀은 농가를 위한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인 ‘도꾸’를 개발한다. 도꾸는 경상도 지역에서 강아지를 부르는 방언이다. 팀장을 맡은 맹성현 씨(반도체공학과 25학번)은 “이상기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신종 병해충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며 “팀원 6명 중 4명이 농촌에서 자란 경험이 있어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도꾸 시제품을 개발한 후 팀원들이 함께 경남 남해 마늘밭, 경북 청도 감나무밭 등을 찾아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실전에서 도꾸를 테스트할 예정이다. 농가의 피드백을 반영해 도꾸를 개선하는 한편 각 농가에서만 활용돼 알려지지 않은 농사 노하우를 수집해 공유하는 것도 목표다.‘아마빌레(Amabile)’ 팀은 청각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체감·연주하는 콘텐츠 개발이 목표다. 아마빌레는 음악 용어로 ‘우아하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아마빌레 팀을 이끄는 김도균 씨(도전탐색과정 25학번)은 “청각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는데 음악을 듣지 못하다 보니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데 장벽이 있다”며 “몸에 직접 진동 피드백을 주는 ‘햅틱’ 기술을 활용해 청각장애인들이 혼자서도 리듬이나 음정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빌레 팀은 음악에 맞춰 버튼 등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리듬 게임 형태의 소프트웨어와 의자, 팔찌를 통해 진동을 전달하는 하드웨어를 결합해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 학교 구성원 위한 기술 개발부터 창업까지
발사체나 AI 같은 기술 외에도 학교 구성원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서비스나 기술도 기대를 모은다. 학교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택시 합승객을 구하고 자동 정산하는 서비스, 올해 전국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체육대회인 ‘스타디움(STadium)’을 준비하는 GIST 야구부의 훈련을 돕기 위해 심판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스트라이크존을 판별하는 시스템, 학교 홍보를 위해 AI로 기존 교가보다 친근하고 입에 잘 붙는 노래 제작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무한도전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생활에 도움을 주며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숙사 등 교내로 음식을 배달 주문하는 앱인 ‘배달긱’은 2017년 무한도전 프로젝트를 통해 GIST에서 출시된 후 스타트업 창업까지 이어져 2019년 KAIST 등 전국 대학으로 서비스가 확장됐다. AI를 활용해 반려견의 옷 사이즈를 추천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시고르자브종의 홍주영 대표도 무한도전 출신이다.
무한도전은 GIST 입학 면접에서 지원자들이 “무한도전 프로젝트를 하려고 GIST에 지원했다”고 대답할 정도로 GIST의 대표적인 학생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2016년부터 무한도전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김희삼 GIST 교수는 “처음에는 기숙사에만 틀어박힌 학생들을 밖으로 끌어내려고 시작한 활동이었다”며 “무한도전의 역사가 10년이나 되다 보니 유용한 발명품이 나오는 등 프로젝트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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