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은행에서 식민지 은행으로… 117년 금융의 영욕 품은 광통관[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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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관에 새겨진 근대 금융사 1909년 지은 대한천일은행 본점… 영친왕이 은행장 맡은 ‘황실은행’ 日 병합 후 조선상업은행 개칭해… 지방銀 합병해 지점망 30개 넘어 총독부 해운회사 조선우선도 입주… ‘조선 월가’ 남대문로 영욕사 담아 현존 최고(最古) 은행 건물인 ‘광통관’. 1909년 대한천일은행 본점으로 건립된 뒤 조선상업은행을 거쳐 현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로 쓰이고 있다. 사진 출처 국가유산포털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한국 사회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형성된 이른바 근대 문화유산의 보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튼 것은 대체로 1990년대 말부터다. 그간 소홀했던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시작됐고, 그 결과 2001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돼 주로 근대 문화유산에 적용되는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됐다. 이 무렵 언론에서는 서울시가 앞으로 도심에서 90m가 넘는 건물의 신축을 금지하기로 했다며 “역사적 가치를 지닌 6개 근대 건축물에 대해 원형 보존을 위한 문화재 지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상 건축물 중 하나가 “가장 오래된 은행 점포”인 “옛 광통관(廣通館)”이었다. (동아일보, 1999년 10월 15일)》 1899년 대한천일은행 설립 당시의 창립청원서와 인가서. 정부와 고위 관리, 상인층이 공동 출자해 설립됐다. 사진 출처 우리1899 홈페이지 광통관은 1909년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본점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대한제국 수립 이후 정부는 개혁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중앙은행 설립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자 차선책으로 정부와 고위 관리, 재력이 풍부한 대상인층이 공동 출자해 1899년 대한천일은행을 설립했다. 대한천일은행은 민간은행의 형태를 취했지만 정부가 조세로 거둔 자금을 독점적으로 운용하는 특권을 받았다. 한때 영친왕이 은행장을, 고종의 최측근인 이용익이 부은행장을 맡기도 하는 등 사실상 ‘정부은행’ 또는 ‘황실은행’으로 기능했다.대한천일은행은 1905년 6월 을사늑약에 의해 설치된 통감부가 조선 경제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화폐 정리 사업을 벌이면서 일시 휴업했다가 이듬해 7월 영업을 재개했다. 이때부터 본점에 일본인 지배인이 등장하고, 일본인 지점장을 임명하는 등 차츰 일본 측의 간섭이 노골화됐다. 여전히 은행장을 비롯한 중역진은 은행 설립에 참여한 조선인 경제인이 주축이었지만 실권은 지배인이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선인 상인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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