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희창]나이키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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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열린 미국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선을 가장 먼저 넘은 건 아디다스와 온(On) 운동화였다. 남성 우승자가 아디다스를, 여성 우승자가 온을 신었다. 결승선에서 선수들을 맞이하던 이들 중에는 나이키 최고경영자(CEO)도 있었다. 나이키는 “러닝은 우리의 심장”이라고 말하는 회사다. 그런 곳을 이끄는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참가자와 관람객에겐 나이키가 한때 확고한 우위를 점했던 도로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 하루였다는 말이 나왔다. ▷도로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도 나이키가 굴욕을 맛봤다. 이달 21일부터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100 지수에서 퇴출당한다. S&P100 지수는 미국을 상징하는 100대 기업을 모아 놓은 지수다. 나이키는 2008년 말부터 줄곧 지수에 포함돼 왔다. S&P500 지수에는 계속 남지만 더 이상 ‘블루칩 100개’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평가인 셈이다. 나이키가 빠진 자리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와 관련된 기업이 채우게 된다. ▷18년 만의 퇴출에는 최악의 주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나이키 주가는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5년 전에 세웠던 최고가와 비교하면 78%가량 떨어졌다. 2000억 달러(약 269조 원)가 넘는 기업 가치가 사라졌다. 특히 나이키가 조던 시리즈를 비롯해 오랫동안 인기를 누려 온 기존 제품들에 안주하는 사이에 온과 호카가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빼앗았다. 나이키 연 매출의 15%를 차지하던 중국 시장에서도 토종 브랜드들에 밀렸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제록스(Xerox)’를 찾아보면 ‘복사하다’라는 뜻도 같이 나온다. 제록스는 한때 복사기로 왕국을 세웠던 회사다. 1971년에는 세계 복사기 매출액의 93%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회사명 자체가 ‘복사하다’라는 동사로도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주당 60달러가 넘던 제록스 주가는 최근에는 3달러대에 머문다. 저가 복사기를 앞세운 일본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왔고, 세상도 전자 문서로 빠르게 변했다. 혁신 경쟁에서 뒤처진 제록스는 결국 코닥, 노키아의 전철을 밟으며 퇴장하고 있다. ▷나이키의 첫 출발은 혁신이었다. 지금도 일부 나이키 운동화에 남아 있는 ‘와플 밑창’이 그 상징이다. 설립자 중 한 명인 미국 오리건대 육상 코치 빌 바워먼이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다 만들어냈다. 나이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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