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0억원대 가상자산 출금을 돌연 중단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상자산 예치업체 하루인베스트의 경영진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하루인베스트의 사업 모델이 실제로 지속 가능했고, 출금 중단은 주로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의도적으로 피해자들을 속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수천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서 전면 무죄 판단이 나옴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 1조원대 가상자산 ‘먹튀’라더니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1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하루인베스트 공동대표 이모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5~23년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다. 강모대표만이 회사 자금 3억6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루인베스트는 고객이 예치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내던 국내 최대 가상자산 예치업체다. 2023년 6월 돌연 가상자산 출금을 막고 사무실을 폐쇄해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2024년 2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합동수사단(현 합수부)은 경영진 3명을 구속하고 강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기소 당시 “무위험·고수익을 보장하는 유사수신처럼 고객을 끌어모았으며 직원 대부분이 고객 유인 업무를 담당했고 회계 시스템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애초 피해자와 피해금액은 각각 1만6000여 명, 1조3900억원으로 특정됐으나 공소장 변경으로 6000여 명, 8805억원으로 줄었다. 재판이 중이던 지난해 8월 이씨가 피해자에게 법정에서 흉기에 피습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 “사업모델 명확…허위 홍보 단정 어려워”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사기죄 성립의 3대 요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사업 지속성과 관련해 2022년 11월 FTX 파산을 결정적 손실의 원인으로 봤다. 하루인베스트가 위탁운용사에 자산의 69%를 맡겼는데, 대부분이 FTX에서 거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가상자산 운용 수익으로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명확한 사업 모델이 있었고, 출금 중단은 FTX 파산에 기인했다”며 “자본잠식이 발생한 사정만으로 지속 가능성이 없는 사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루인베스트는 명확한 사업모델의 실체가 있었고, 17개월 중 11개월 동안 고객 이자를 웃도는 운용수익을 확보해 지속 가능한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허위 홍보로 고객을 유인했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품은 최소 3개월 만기 전까지 출금이 불가능했고, 예치 시점과 운용 시점의 차이를 고려해 수익률을 고지하고 지급했다”며 “모든 상품의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낮춘 무리하게 고수익을 전제로 홍보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편취 고의 부분에서는 경영진이 개인자금 55억원을 사업비로 투입한 데다 가족과 함께 74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예치해 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인정했다.
◇ 피해자 보상 난항 겪을 듯
경영진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피해자 보상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이런 사건은 형사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돼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인베스트는 지난해 11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총력전을 펼질 전망이다. 한 대형로펌 형사 변호사는 “경영 실패가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1심 판단을 뒤집으려면 검찰은 외부 요인이 아니었다는 점과 자금 흐름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