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엘리자베스 1세를 지킨 ‘비밀의 눈’[정일천의 정보전과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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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월싱엄.
출처 위키피디아

프랜시스 월싱엄. 출처 위키피디아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내각이 국가 정보 역량 강화를 위한 정보기관 확대·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통합 정보기관 신설과 정보 유출 차단을 위한 스파이 방지법 제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으로 불리는 국가정보국과 국가정보회의는 이미 창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출범을 앞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잘 활용한 대표적 인물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다. 그는 권력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즉위해 재임 기간 20여 차례의 반란 음모에 시달렸다. 개신교 중심 국가 운영에 반대하는 가톨릭 세력이 그를 적통 왕위 계승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왕실을 보호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해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던 데는 정보조직의 역할이 컸다. 특히 최측근 프랜시스 월싱엄은 정보조직 수장으로서 최고의 조력자였다. 그는 ‘워처스(Watchers)’라는 비밀 정보조직을 만들어 국내외의 위협을 차단하고 여왕의 통치를 뒷받침했다.

1571년 적발된 ‘리돌피의 음모’는 그의 정보망이 거둔 최고의 성과였다. 런던 주재 피렌체 은행가이자 교황청 대리인이었던 로베르토 리돌피가 스페인 군대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내부 가톨릭 세력의 봉기를 통해 왕위 찬탈을 기도한 사건이다. 이 음모는 그의 의심스러운 해외 동선이 이탈리아에 구축된 휴민트망에 포착되면서 꼬리가 밟혔다. 결국 반란 계획이 담긴 암호 편지를 전달하던 연락책이 체포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월싱엄은 외국 대사관이나 반대 세력 내부에 이중 스파이를 심기도 했다. 1583년 프랜시스 슬록모턴이라는 가톨릭 귀족이 프랑스와 스페인, 교황청 세력과 연대해 반란을 모의했다. 하지만 런던 주재 프랑스대사관 내 코드명 ‘앙리 파고’로 명명된 스파이를 통해 슬록모턴과 프랑스 대사 간 비밀 접촉과 교신 내용 등을 입수해 조기에 무력화시켰다. 이중 스파이를 활용해 함정을 파기도 했다. 1586년 가톨릭 신자 앤서니 배빙턴이 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여왕을 제거하려 했다. 그는 반란 세력 간 비밀 연락을 위해 맥주통 내부 공간에 서신을 숨겼는데, 이 수법은 반란조직 내 이중 스파이 길버트 기퍼드가 제안한 덫이었다. 결국 비밀 연락 통로가 장악돼 모든 서신이 노출되면서 가담자들은 일망타진됐다.

정보수장의 활약은 해외 정보 수집에서도 빛났다. 그는 국내외 첩보망을 통해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공 계획을 입수했다. 특히 스페인 남부 카디스항에 주요 전력이 결집해 있다는 첩보에 따라 선제공격을 통해 막대한 타격을 안겼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침공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잉글랜드는 전면전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고, 1년 후 스페인 무적함대의 공격을 물리쳤다.

오늘날 안보는 기존의 군사안보라는 고전적 개념에서 테러, 사이버범죄, 국제범죄 외 감염병이나 에너지 부족과 같은 신안보 위협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정보 사용자의 역할과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 수집된 정보 자체의 오류나 잘못된 분석이 정보 실패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정보 사용자의 부적절한 활용이나 오판이 정보 실패로 이어져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보기관의 역할만큼 정책을 결정하는 정보 사용자가 중요한 이유다. 정보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활용 능력은 국가지도자가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다.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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