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레드카드도 트럼프 맘대로 [횡설수설/신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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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마음에 안 들면 이 레드카드를 보여줘라.” 2018년 백악관을 찾은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구 주심이 쓰는 레드카드를 선물하며 이런 농담을 건넸다. 당시 미국 언론의 비판 보도에 불만이 많았던 트럼프는 이 선물에 흡족해했다고 한다. 트럼프와 친해지려는 인판티노 회장의 노력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뉴욕 트럼프 타워에 FIFA 사무소를 열었고, 지난해 ‘FIFA 평화상’을 만들어 트럼프에게 단독 수여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흥행을 위해 개최국 대통령의 마음을 얻는 데 사활을 건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FIFA는 미국 축구대표팀 에이스가 받은 레드카드마저 사실상 없던 일로 만들어줘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 4경기에서 3골을 넣은 폴러린 벌로건 선수는 최근 32강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발목을 밟는 반칙으로 퇴장당했다. 남은 10명이 뛰고도 경기에서 이겨 16강에 진출한 미국은 강호 벨기에와 맞붙게 됐는데, 레드카드로 핵심 공격수의 출전이 막혀 버렸다. 하지만 트럼프가 인판티노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한 뒤 놀라운 결정이 내려졌다. FIFA는 벌로건 선수의 ‘다음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1년 유예해 벨기에전에 뛸 수 있게 해줬다.

▷선수들이 레드카드를 두려워하는 건 경기 중 퇴장과 함께 다음 경기 출전도 자동 금지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안전과 경기의 공정성을 위해 이런 강력한 불이익을 준다. 레드카드가 단지 퇴장으로 그친다면 경기 종료가 다가올수록 백태클이나 악질적인 경기 지연 등 비겁한 반칙이 난무할 수 있다. 다음 경기 출전 금지는 반칙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득보다 손해를 훨씬 크게 만들어 그라운드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벌로건 선수는 레드카드 판정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경기 후 심판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억울하더라도 결정은 받아들여야 한다. 월드컵 시청자들에게 선수로서 올바른 대응법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작 선수는 불이익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트럼프와 FIFA 회장의 전화 한 통으로 레드카드가 뒤집힌 것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퇴장당한 선수가 다음 경기에 출전한 건 1962년 칠레 월드컵 이후 64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브라질의 핵심 공격수 가힌샤가 준결승전에서 퇴장당하자 브라질 정부가 나서 결승전 흥행을 위해선 가힌샤가 필요하다고 FIFA를 설득해 출전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이후 FIFA 규정이 크게 강화됐고, 이번 월드컵부턴 경기 중 대치하다가 입만 가려도 혐오 발언으로 간주해 퇴장시킬 정도로 엄격해졌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할 ‘룰’이 협상 대상이 돼버리면 ‘공은 둥글다’는 말도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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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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