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 실패를 교훈 삼아 깊은 반성과 성찰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익숙한 문구다.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 그리고 이번 대회까지. 실패 뒤의 대응은 비슷하다. 단어만 조금 달라졌을 뿐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느낌이다.
반복되는 건 사과문뿐일까. 많은 축구인이 한국 축구가 ‘리셋(Reset)’을 반복한다고 지적한다. 리셋은 기억과 데이터를 지우는 일이다. 한 전직 월드컵 국가대표는 협회의 ‘반성과 성찰’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11회 연속 월드컵에 나갔고 2002년에는 4강도 경험했다. 그런데 왜 늘 백지에서 다시 준비를 시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월드컵에서 얻은 게 없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맞힌 문제를 계속 점검하고, 틀린 문제는 오답 노트에 정리하면서 실수를 줄인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월드컵 때마다 벼락치기를 한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새출발을 선언한다. 감독이 갈리고, 전술이 바뀌고, 대표팀이 추구하는 축구도 새롭게 설계된다. 선수들은 다시 적응을 시작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난 월드컵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으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전 월드컵에서 검증된 전술과 선수들의 경험, 국제 무대에서 확인한 경쟁력이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 활용되고 있을까. 한국 축구가 밀고 갈 강점은 무엇인지, 약점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합의가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축구협회가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새 감독을 선임할 때마다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 달라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의 전술과 방향은 그때그때 감독의 성향에 좌우됐고, 감독이 떠나면 그 축구도 함께 사라졌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전후 상황만 봐도 그렇다.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에서 다듬어진 후방 빌드업과 점유율 중심의 경기 운영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사실상 단절됐다. 일본에서 25년 넘게 한국 축구를 취재한 요시자키 에이지 기자는 “벤투 감독 체제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는데, 맥락 없는 클린스만 감독이 오면서 연속성이 끊겼다”고 지적했다.대한축구협회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14년과 2018년 월드컵이 끝난 뒤 백서를 발간해 실패 원인과 개선 과제를 정리했다. 그러나 그 백서는 다음 월드컵의 설계도가 되지 못했다. 감독 선임의 기준, 대표팀 운영의 원칙이 되는 시스템으로 축적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또 다른 전면 개편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4년마다 원점에서 새로 태어날 필요는 없다. 연속성 있는 계획과 활용 방안이 나와야 한다. 다음 월드컵은 이전 대회의 연장선이다.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이 그러지 않았나.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이번 대한축구협회 사과문에 ‘리셋’을 멈추겠다는 선언이 담겼으면 어땠을까. 반성과 성찰의 핵심 포인트다.
유재영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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