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오는 8일 종료되는 상호관세 유예기간을 쉽게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유예기간 연장을 언급하던 분위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예 연장이 필요 없다는 태도에 180도 바뀌었다. 유예 여부를 막판까지 명확히 하지 않고 상대방을 압박해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완고한 태도면 高관세”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30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7월9일 이후 국가들이 “높은 관세율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선의(good faith)로 협상하는 나라들도 완고한 태도를 보이며 결승선에 이르지 못한다면 4월2일에 발표한 수준의 (높은) 관세율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협상에 성실하게 응하고 있는 나라에도 고율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마감시한을 앞두고 이번 주에 주요 협상이 마무리될 것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거듭해서 보내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중 관세율 통지를 위해 무역 협상팀과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은 인터뷰에서 “협상이 줄줄이 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베선트 장관의 언급은 7차례 협상을 했지만 자동차 등의 부문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일본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에 “세계 각국이 미국에 얼마나 버릇없이 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일본에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을 매우 존중하지만 그들은 미국산 쌀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국에선 심각한 쌀 부족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자동차 관세 면제를 요청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미국산 자동차를 수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7월20일 참의원 선거가 끝나기 전에 협상에서 쉽게 양보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인도, LNG 수입량 늘리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협상 타결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던 인도는 수천 개 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에 합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가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에서 더 많은 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인도는 소규모 농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농업과 유제품 관련 부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소에서 비롯된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유제품의 경우 힌두교도의 터부를 건드릴 수 있어 민감한 문제라고 FT는 설명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과 막바지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실무팀이 지난달 30일 워싱턴으로 향했으며 자신도 1일 중 워싱턴에 갈 예정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셰프초비치 위원은 2~3일 이틀간 미국과 최종 협상을 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EU는 캐나다와 달리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美 제약업계는 “韓 약값 너무 싸” 민원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일방통행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 기업들은 저마다 민원을 쏟아내기 바쁜 상황이다. 미국 제약업계 로비단체인 미국제약협회(PhRMA)는 지난달 27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외국 정부의 불공정한 제약정책과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무역협상을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협회는 문제가 심각한 국가로 한국 호주 캐나다 일본 영국 EU 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한국 건강보험 당국이 약값을 공정한 시장가치 이하로 억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현재 반도체 목재 구리 의약품 등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중이다. 트럼프 정부는 업계 의견을 수렴한 후 철강관세(50%) 적용대상에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추가했다.
미국 측이 앞서 우리 정부에 보내온 협상 초안에도 업계의 민원 내용을 여과 없이 담은 당혹스러운 내용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한국의 근로자 소득이 평균적으로 미국에 비해 적기 때문에 미국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있으며, 이것을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협상이 진행되면서 무리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부분을 빨리 찾아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