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분양가가 뛰겠어'라며 2년간 청약에 참여 안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승이 멈추질 않네요. 더 늦기 전에 청약해야겠어요."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박모씨)
아파트 분양가 상승세가 가파르다. 최근 10년간 2.1배 뛴 분양가는 오는 30일부터 시행되는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 여파로 한층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민간 아파트의 경우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아파트 기준으로 현행보다 가구당 약 130만원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건설사들은 이보다 실제 추가 공사비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오는 30일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 에너지 소비 절감과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에너지절약형 친환경주택 건설 기준을 개정하고 오는 30일부터 시행한다고 전날 밝혔다.
개정안에 따라 민간사업 주체는 신축 공동주택의 에너지 성능 기준 또는 시방기준 중 하나를 선택해 제로에너지건축물 5등급 수준의 에너지 성능을 충족해야 한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건축물의 에너지 자립률을 끌어올려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과 생산량을 더한 값을 '0'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성능 기준의 경우 기존 기준(120㎾h/㎡yr 미만)보다 약 16.7% 향상된 100㎾h/㎡yr 미만으로 강화한다. 1㎾h/㎡·yr는 건축물 1㎡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양으로, 1㎾h는 냉장고 약 15시간, LED TV 약 5~8시간, 에어컨 약 40~90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시방기준도 성능 기준과 유사한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항목별 에너지 성능 기준을 강화한다. 이에 따라 창의 단열재 등급 및 강재문의 기밀성능 등급은 각각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됐으며, 단위 면적당 조명 밀도는 8W/㎡ 이하에서 6W/㎡ 이하로 줄어든다. 또 신재생에너지 설계 점수는 25점에서 50점으로 강화되며, 환기용 전열교환기 설치도 의무화한다.
인증 의무화하면 분양가 얼마나 더 오르나
국토부에 따르면 민간 아파트에 이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경우 현행 기준을 적용했을 때보다 전용면적 84㎡ 아파트 기준 가구당 약 130만원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토부가 개별난방 방식인 최고 25층 아파트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3.3㎡당 5만1000원의 건축비가 더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절감하는 에너지 사용량을 고려할 때 5년 7개월 이내에 회수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반면 건설업계에선 원자재 가격 급등과 맞물리면서 실제 추가 공사비는 정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상승, 가구당 300만원 이상이 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대한건축학회에서도 제로에너지 건축물 5등급 기준을 충족하려면 공사비가 기존보다 26~35%가량 뛸 것으로 내다봤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의 설명대로 에너지 사용량을 고려했을 때 회수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공사비가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느냐"며 "적든 많든 분양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10년 동안 2배 뛴 분양가…"더 뛸 수도"
부동산 리서치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최근 10년 전국에 있는 민간 아파트 3.3㎡당 분양가는 2015년 988만원에서 2024년 2066만원으로 10년간 2.1배 상승했다. 지역별로는 △제주 3.1배 △대전 2.5배 △서울 2.4배 △광주 2.4배 △울산 2.2배 △경북 2.1배 순으로 상승 폭이 컸다.
분양가 상승은 주택 수요자의 가격 부담뿐 아니라 주택 공급자인 건설사에게도 부담이다. 나날이 오르는 건설자재 가격, 인건비 등은 원가 상승을 유발해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고분양가로 미분양 사업장이 나올 확률도 커진다. 2024년 말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들의 매출 대비 원가율은 92.98%에 육박한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만173가구 수준이다.
장선영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제도의 경우 공공분양 아파트는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유예기간을 적용받던 민간분양 아파트는 이달 말 이후 5등급(에너지자립률 20~40% 미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추가로 친환경 설비와 자재, 기술 등을 적용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물 유지관리비 감소 등의 경제적 효과가 있지만, 당장 초기 건설 투자비용 상승으로 인해 분양가가 추가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9월에는 분양가 산정에 근간이 되는 국토교통부 기본형건축비가 발표될 예정인데 공사비 인상, 건설현장 안전비용 증가 등의 영향으로 2020년 9월 이후 지속적인 상승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분양가 우상향 분위기를 더욱 자극할 것"이라며 "분양가 추가 인상이 예상되면서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 가격 부담 심화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