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대선 공약으로 등장했을 때, 많은 학자가 우려했다. 지난 20년간 수도권 집중은 가속화했고, 지방거점국립대(지거국)는 완연한 내리막을 걸었다. 최상위 논문 수, 교원 1인당 연구비…. 어느 지표로 보든 수도권 명문대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수도권 선호가 굳어지면서 지거국은 우수 교원도, 우수 학생도 끌어오기 힘들어졌다. 이 상태에서 재정만 쏟아붓는다고 지거국이 곧장 서울대가 될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첫째, 9개 지거국에 재원을 균등 배분하지 말 것. 지거국끼리도 경쟁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둘째, 기존 교수진만으로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기는 어렵다. 파격적 연봉과 연구비로 외부 석학을 영입해야 한다. 성과에 따른 평가·보상 체계도 필수다. 셋째, 학교마다 ‘브랜드 단과대학’을 세울 것. 최고의 사람과 자원을 그곳에 몰아주자. 넷째, 평가는 논문 편수가 아니라 최상위 연구의 질로 해야 한다.
지난 15일 발표된 교육부 최종안은 이 같은 방향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9개 대학 균등 지원 대신 3개 대학 선정·집중 투자다. 대학당 1000억원 규모의 추가 재원이 들어간다. 지역 성장엔진 산업과 연계한 브랜드 단과대학이 들어서고, 세계적 인센티브를 내건 ‘(가칭) 특성화 교원 트랙’도 신설된다. ‘제2 창학’ 수준의 구조 개편이 정책 언어로 살아남은 것이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성공 요건은 잘하는 곳을 더 잘하도록 돕는 것이다. 관건은 역시 평가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낮은 수준의 양산형 논문은 더 이상 성과가 아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최상위 연구가 대접받아야 한다. 그 연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직접 묻는 방식도 필요하다. 영국과 홍콩이 이미 걸어가고 있는 길이다. 제대로 된 평가가 자리 잡을 때, 이번 집중 투자는 단발성 예산 투입을 넘어 대한민국 대학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세계선도대학 10개 만들기’여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낸 2~3개 대학이 그 명단에 포함되길 바란다. 왜 필요한가? 대학은 혁신의 허브다. 인재 양성의 핵심 채널이기도 하다. 미국 첨단산업 경쟁력은 스탠퍼드대·MIT·하버드대 같은 세계선도대학이 쏟아낸 연구와 인재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도,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도 그 출발점은 대학이었다. 중국도 칭화대·베이징대에 이어 여러 대학을 세계 톱50 반열에 올렸다. AI·반도체·바이오 등 많은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 국가 경제 규모 대비 한국의 세계 최상위권 대학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곧 연구개발(R&D) 생산성과 첨단산업 경쟁력의 한계로 귀결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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