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부실은 부정이 아니고, 극우는 보수가 아니다

3 hours ago 2

투표용지 부족에 침해된 민주주의 기본권
‘견제 공백’ 선관위 총체적 부실이 낳은 것
中 개입설 같은 부정선거론 끼어들고 있어
사태 철저 규명하되 음모론에는 선 그어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를 못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참정권이 침해된 것이다. 황당한 일이다. 사태가 발생한 경위,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운영 실태, 선관위 직원의 친인척 채용 논란, 선거 때면 선관위 직원보다 지방공무원들의 부담이 과중하다는 문제 제기 등을 잘 들여다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살펴야 한다.

그러나 투표용지 부족으로 선거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말은 아니다. 부실선거와 부정선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투표용지 부족이 부정선거론이나 재선거론으로 확대되는 것, 부실선거가 극우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을 엄중히 경계해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의 위원들로 구성되며, 위원들은 국회 인사청문을 거친다. 위원회 구성 자체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3권 분립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선관위원장을 지명한 대법원장, 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법관의 정치적 성향 같은 인적 요소로 부실선거를 설명하려는 관점은 옳지 않다. 이런 관점은 개인이 갖고 있던 편견을 쉽게 설명할 수 있기에 유혹적이지만, 결코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총체적 부실을 해결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데 적합한 관점도 아니다.

이번 부실선거는 3권의 견제와 균형 아래 선거를 실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든 선관위를 누구도 온전히 견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선관위의 업무 부실이나 채용의 불투명성 같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문제의 발견과 해결이 매우 어렵다는 점도 일깨웠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도,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이 되는 사법부도, 그리고 국회도 나서서 처리하기를 껄끄러워한다. 모두의 역할이 누구의 역할도 아닌 상황에서 해법을 찾아 나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지켜보되 부정선거론이나 극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다. 3권 분립의 원칙을 확인시키며 올바른 방향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5일부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부실선거를 규탄하는 사람들과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이 느슨한 군집을 이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재선거를 하자는 주장과 중국 공산당이 부정선거로 유도했다는 주장, 심지어 미국 국기가 휘날리고 할렐루야와 통성기도까지 나왔다. 여기까지야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집회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유소년 선수들의 소지품을 임의로 검사하고, 경찰의 명찰을 촬영해 중국 공안이라고 몰아가는 행태가 나타났다.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다 체포된 사람도 있었고, 기자들이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온라인에는 인공지능(AI)으로 조악하게 합성한 사진과 함께 ‘레거시 언론이 잠실민주화운동과 십만 군중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등 극우적 주장이 퍼지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정상적인 문제 제기도, 이른바 청년 보수의 목소리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극우 폭동과 유사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 이 극우 집회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야당 국회의원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집회에 참석해 본 경험에 비춰 보면 헛웃음만 나오는 변명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조끼를 입고 건물에 들어가기만 해도 제지하고, 기껏해야 십수 명이 각각 1인 집회를 위해 드문드문 깃발만 들고 있어도 깃발을 내리라는 둥 서로 더 떨어지라는 둥 사사건건 통제하던 경찰은 어디로 갔는가. 왜 내가 만난 경찰과 저들이 만난 경찰이 다른가. 공공질서 유지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조심스러운 것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일견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러나 경찰이 도를 넘은 폭력에 비난이 빗발치자 그제야 수사에 착수한 상황은 잘못됐다. 이번 사태가 확실히 규명되고 국민들이 조사 결과를 수용하려면 사회적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집회에서 도를 넘는 행위를 방치해 보수가 극우로 오염되고, 극우가 보수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친다면 그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한 번의 부실선거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공정하게 자기 역할을 해 사회적 신뢰를 지켜야 한다. 훼손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부실선거를 철저히 규명하되 극우와 보수를 구분해야 한다. 부실선거 비판이 부정선거 음모로 변질되고, 극우가 보수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과도하게 부각될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 극우와 보수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줄 긋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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