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뉴욕타임스는 2024년 최고의 클래식 공연을 발표했다. 선정된 공연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LA필하모닉, 메트 오페라 등의 대규모 단체들의 연주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20개의 콘서트 중 유일하게 개인 자격으로 이름을 올린 공연이 바로 작년 2월 21일에 있었던 임윤찬의 카네기홀 데뷔 리사이틀이었다.
‘자신감 있고 눈부신(confident and dazzling) 연주’로 뉴욕타임스의 극찬을 받았던 그가 지난달 25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으로 다시 카네기홀 무대를 찾았다.
1741년, 만년의 바흐가 삶을 통한 깊은 성찰을 구조적 완성물로 담아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총 4부로 이루어진 ‘건반 연습곡 시리즈(Clavier-Übung)’의 마지막 부분으로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됐다. 바흐는 작곡가는 물론 당대 최고의 건반 연주자로도 명성이 높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보조 역할로만 여겨졌던 엄지손가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주법으로 복잡한 성부 표현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혁신적인 연주자로 평가받았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최후의 영역으로 남겨둔 작곡가 중 하나가 바흐이다. 청중의 찬사와 언론의 호평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천재 청년이 바라보는 바흐는 어떤 모습일지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무대를 걸어 나와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은 임윤찬은 한동안 양손을 내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느끼는 어색함과 긴장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질 무렵 첫 번째 곡 ‘아리아(Aria)’를 시작했다. 마라톤 경주의 시작지점과도 같은 이곡은 오른손이 노래하는 느리고 단순한 멜로디보다 왼손이 떠받치는 저음부의 진행으로 전개되는 화성의 흐름이 곡 전체를 지탱한다.
피아니스트 랑랑은 이 작품을 연주했던 지난 2021년 10월 카네기홀 리사이틀에서 아리아의 템포를 느리고 차분하게 잡았다. 속도가 느리면 흐름이 둔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베이스라인뿐만 아니라 멜로디와 꾸밈음의 구조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임윤찬은 지난 11월 뉴욕 필하모닉과 쇼팽 협주곡 2번을 연주했을 때 앙코르로 4분 남짓의 이 곡을 연주했다.
아리아의 문을 열고 들어선 1번 변주곡에서 임윤찬은 일반적인 속도보다 살짝 빠르다 싶은 템포로 시작했다. ‘빠르다 싶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물리적 템포보다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속도감이 컸기 때문이다. 경쾌함과는 다른 결의 생동감이 생겨났다. 그는 3번과 4번 변주곡에서 음의 움직임을 선명하고 또렷하게 부각하기보다는, 연필로 그린 스케치를 손으로 문질러 뿌옇게 만드는 듯한 효과를 통해 특정 구간의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하게 했다.
5번은 단단히 모여있던 실타래들이 일제히 퍼져나가듯, 맑고 유려한 음표들은 압축된 속도감 속에서 정교한 흐름을 뽐냈다. 6번 변주곡은 다시 블러 필터를 장착한 듯 내성부는 물론이고 멜로디의 윤곽도 흐릿한 톤으로 바꿔 컬러를 대비시켰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의 화성 구조를 기반으로 총 30개의 건축적 변주를 통해 구성되었다. 짧은 곡들의 묶음으로 이뤄진 이런 작품을 실연으로 접할 때는 음반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곡의 구조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기도 하지만, 연주자들의 판단으로 쉬어가는 구간을 정하기도 한다. 임윤찬 역시 변주곡의 묶음을 정해 긴 숨을 내쉬기도 했고, 손을 가볍게 털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관객들 역시 수줍고 예의 있게 목청을 가다듬었다.
13번 변주곡의 경우는 실제 템포보다 더 속도감이 느껴졌던 1번과는 반대였다. 마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호수처럼 고요하고 유장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그래서 오히려 이곡이 ‘충분히 느린 곡’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느림과 잔잔함이 주는 뉘앙스는 한 몸이 결코 아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체에서 단조로 쓰인 곡은 단 세 곡뿐이다. 그중 첫 번째 단조인 15번은 전반부 마지막 곡으로 내면 깊숙한 감정이 고요한 절정으로 이르는 순간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임윤찬은 유독 몸을 많이 움직였다. 고개를 깊이 숙였다가 이내 몸을 뒤로 젖히며, 작품에 서려있던 사무치는 슬픔을 휘적휘적 불러냈다.
임윤찬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로부터 2011년, 그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녹음하던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손 교수는 15번에 담긴 처연함은 잔잔하게 스며들어야 하며, 마지막 음은 마치 사라지듯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녹음 후 이 부분을 다시 들어보니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담겨 수정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손 교수의 요청으로 이 부분을 들어본 그의 스승 러셀 셔먼 교수는 “가장 아름답게 연주된 부분을 왜 수정하려고 하느냐”며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 임윤찬은 15번의 마지막 음을 영원 속으로 조용히 놓아주었다. 그의 손을 떠난 피아니시모는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갔다.
한 관객의 넋두리처럼 이 곡은 연주자뿐만 아니라 듣는 이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연주 시간만 해도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악장 구분도 없어서 관객들 역시 숨을 돌릴 틈이 없다.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이 곡은 바흐의 ‘자장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떨구는 관객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반면, 악보를 손에 들고 임윤찬의 연주를 따라가는 열성 관객도 있었고, 어떤 관객은 온전한 몰입을 위해 미리 연주 영상을 보며 예습을 해왔다고 말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후반부를 시작하는 16번은 전형적인 프렌치 서곡풍으로 쓰였다. 정교한 리듬 골조를 귀를 통해 확인하는 것만으로 카타르시스가 몰려왔다. 임윤찬은 장중함으로 열고 경쾌함으로 달려 나가는 푸가의 대조적인 움직임을 품격 있게 그려냈다. 왼손과 오른손이 복잡하고 변칙적으로 얽혀가는 23번 변주에서는 가볍고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며 동시에 바흐의 화성적 대담함을 속도감 있게 구현했다.
25번 역시 단조로 쓰인 곡이다. 15번 변주곡이 낯선 비애였다면 이 곡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슬픔이다. 최소한의 음으로 간결하게 쓰인 이 곡에서 임윤찬은 담담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을 통해 나오던 멜로디는 어디론가 곧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애잔함이 밀려들었다. 이어진 26번은 빠르고 활기찬 에너지로 몰아치며 찰나의 머뭇거림 없이 굽이쳐 물결쳤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건반과 독대하던 임윤찬은 어깨가 들석일정도로 몰입해 달려 나갔다.
마지막 30번은 앞선 29개의 변주들과는 달리 아리아의 베이스라인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쓰인 변주곡이다. 바흐는 두 개의 독일 전통 선율을 대위법으로 묶어 ‘콰들리벳(Quodlibet)’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임윤찬은 이전까지 따르던 엄격함과 치밀했던 모습과는 달리, 마지막 변주에서는 가볍고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듯 차분히 마지막 음까지 도달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손을 건반 위에 얹은 채 한동안 그대로 머물렀다. 불 꺼진 공연장의 암흑과도 같던 그 순간, 그는 마치 신의 가호를 기다리는 순례자 같았다. 이 절대 침묵은 이날 연주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대장정은 ‘아리아 다 카포(Aria da capo)’, 즉 아리아가 있는 처음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완성된다. 신의 응답을 받은 듯, 임윤찬은 다시 첫 음을 내딛으며 긴 여정의 끝자락에 놓인 문을 조용히 열고 마지막 장을 맺었다. 80분 동안 숨을 죽이며 그의 여정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임윤찬의 손이 완전히 내려올 때까지 끝까지 침묵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1955년,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는 22세의 나이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며, 이 작품을 현대 피아노 레퍼토리로 재조명했다. 그의 해석은 바흐의 건반 음악을 피아노 레퍼토리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81년, 그는 같은 작품을 다시 한번 녹음한다. 첫 음반이 빠르고 대담한 템포, 젊은 에너지와 파격으로 가득했다면, 중년의 글렌 굴드는 깊은 숙고와 절제된 감정, 그리고 성숙한 시선을 담아냈다. 랑랑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요청으로 이 곡을 처음 연주했다.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 후, 이 작품으로 음반을 내놓기까지는 무려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21세의 청년이 그려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름답고 찬란했다. 흠결이 보이지 않는 연주였고, 젊은 확신으로 가득 찬 호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그가 인생의 호기심을 조금 덜어내는 시기를 맞이했을 때,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의 완벽함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의 시선을 담은 임윤찬의 바흐를 기대해 본다.
임윤찬은 일곱 번의 커튼콜 중 한 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왼손으로 몇 개의 건반을 조심스럽게 눌러나갔고, 마치 연주 도중 멈춰버린 것처럼 1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영문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관객들에게는 파격적이면서도 낯선 선택이었다. 그가 연주한 곡은 다름 아닌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체를 지탱하는 아리아의 베이스라인이었다. 임윤찬의 내일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 단순하면서도 더없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