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 공화국) 태생으로 오스트리아 국적을 지닌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이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자택에서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브렌델은 1931년 1월 5일 체코슬로바키아 비젠베르크(현 체코 루치나 나트 데스노우)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 그라츠로 이주했다. 이후 그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갖고 활동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음악가도 예술가도 지식인도 아닌 가정에서 자랐으며, 모든 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브렌델의 연주 경력은 60년에 걸쳐 이어졌다. 유럽과 북미의 주요 공연장에서, 한 해에 100회의 연주를 할 때도 있었으다. 1973년 미국 데뷔 이후 2008년 은퇴까지 카네기홀에만 80회 이상 출연했다.
1948년 그라츠에서 열린 첫 공개 독주회에서는 바흐, 브람스, 리스트의 곡을 연주했고, 앙코르 곡으로는 자신 작곡한 이중 푸가 형식의 소나타를 선보였다. 1970년대 런던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기교의 화려함보다 지적이고 사색적인 연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1950년대 LP 음반의 보급과 함께 미국에도 그의 음악이 알려졌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5번 초연, 슈베르트 후기 피아노 음악,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등 수많은 명반을 남겼다.
특히 그는 베토벤 음악 해석에서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전곡을 처음으로 완주 녹음해 앨범을 발매한 피아니스트다. 이 음반은 1965년 프랑스 그랑프리 뒤 디스크(Grand Prix du Disque)를 수상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브렌델은 일반적인 피아노 레퍼토리보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곡을 선택했다. 쇼팽, 슈만, 드뷔시, 라흐마니노프는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 대신 리스트와 부조니를 적극 연주했다.
폴 루이스는 "그는 30년 넘게 나의 멘토이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며 스승의 죽음을 애도했다. 브렌델은 수많은 후학을 길러내며 '피아니스트들의 멘토'로 불렸다.
그는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작가이자 지식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수많은 에세이, 시, 희곡을 발표했으며,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도 글을 기고했다. 그의 외모와 태도는 지적인 이미지와 맞물려 독특한 카리스마를 형성했다. 헝클어진 머리, 두꺼운 안경, 약간 굽은 자세 등은 청중에게 인상 깊은 무대를 남겼다.
브렌델은 바이마르, 캠브리지, 옥스퍼드, 예일, 줄리아드 등을 포함해 23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왕립음악원 명예부원장, 빈 필하모닉 명예회원 등에 올랐다. 소닝 음악상, 지멘스상, 일본 프레미엄 임페리얼상 등을 수상했다.
브렌델은 자신의 성공을 겸손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신동도 아니었으며, 누구보다 빠르거나 큰 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성공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지하고 엄숙한 인상과 달리 브렌델은 부조리한 유머를 즐겼고, 특히 만화가 게리 라슨의 작품을 좋아했다. 생전 그는 어떤 해석으로 공연을 선보일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연주는 걸작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1년부터 런던에서 거주했다. 유족으로는 첫 번째 부인 아이리스 하이만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도리스를 비롯해 두 번째 부인 아이린 세믈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인 아드리안(첼리스트), 카타리나, 소피 등 네 명의 자녀와 네 명의 손주가 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