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오케스트라가 공연장 밖으로 가는 이유[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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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콘서트홀을 먼저 생각한다. 높은 천장과 붉은 객석, 무대 위 정장을 입은 연주자들이 있는 장면이다.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은 그런 공간 안에서 연주되는 예술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대부분의 작품은 공연장 음향을 전제로 작곡됐고, 오늘날에도 최고의 음악적 경험은 좋은 공연장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은 이상할 정도로 공연장 밖을 좋아한다. 가장 좋은 공연장을 가진 이들이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간다. 관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음악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어쩌면 좋은 도시는 훌륭한 공연장을 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년 여름 독일 베를린의 숲속 야외극장 발트뷔네에는 수만 명의 관객이 모인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야외음악회는 이제 하나의 도시축제가 됐다.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여름밤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궁전 정원을 무대로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음악을 선사한다. 미국 탱글우드에서는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오케스트라를 듣고, 음악은 자연과 일상의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그렇다면 음악은 왜 광장으로 나오는가. 많은 사람은 접근성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 예술이라는 인식이 있다. 무엇을 입고 가야 하는지,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혼자 가도 괜찮은지, 음악을 미리 공부하고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장르다. 그래서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는 일은 오랫동안 문화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돼 왔다.

물론 접근성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음악이 광장으로 나오는 이유는 그것보다 더 오래된 데 있다. 음악은 원래부터 공연장 안에만 머물던 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정과 극장이 발달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광장과 축제, 종교행사 속에서 음악을 함께 나눴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역시 처음부터 콘서트홀을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 정원 연회와 축하 행사, 저녁 모임처럼 사람들이 어울리는 자리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이었다. 지금처럼 조용히 앉아 감상하기보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되던 음악에 가까웠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공연장에서의 연주회는 음악이 존재해온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야외음악회는 단순한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음악이 원래 사람들과 만나던 방식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러 왔지만, 누군가는 우연히 발걸음을 멈춘다. 어떤 사람들은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또 어떤 사람들은 멀리서 음악을 배경 삼아 저녁시간을 보낸다. 목적이야 어떻든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그 공간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음악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야 하는 예술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을 함께 채우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이 그런 우연한 만남을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음향에서 들은 공연은 아니었지만,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에서 들리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단순히 ‘들은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도 이런 장면을 만날 수 있다. 해마다 서울 한강공원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강변음악회가 열린다.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가족들은 저녁 도시락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멀리 강 위로 유람선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은 잠시 속도를 늦춘 채 귀를 기울인다. 어느 순간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무대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강바람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도시의 저녁 속으로 천천히 번져 나간다.

좋은 도시란 문화시설이 많은 도시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음악을 만날 수 있는 도시, 티켓을 예매하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게 되는 도시, 그리고 그 경험이 오래 기억으로 남는 도시가 아닐까. 음악이 밖으로 나오는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도시는 오늘도 음악을 공연장 안에만 두지 않는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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