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화재로 ‘행정 마비’… 예비 시스템 없어 복구 늦어져
과거 ‘조선왕조실록’ 보존 위해… 여러 권 만들어 지역마다 보관
이중화된 재해복구 시스템 필요
● ‘서버, 전원, 데이터’ 이중화 작업하면 든든
우리 조상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백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어요. 조선왕조실록은 똑같은 책을 여러 부 만들어 한양뿐 아니라 충주, 전주, 성주 등 멀리 떨어진 사고(史庫)에 나눠 보관했어요. 화재나 전쟁이 일어나도 최소한 한 부는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실제로 임진왜란 때 많은 사고가 불탔지만 전주사고본이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조선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건 단순히 보관만 한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책을 꺼내 습기를 제거하고 벌레 먹은 곳이 없는지 점검하는 포쇄(曝曬)와 바람에 말리는 거풍(擧風) 작업으로 점검했습니다.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최근 국가 전산망 화재를 보면 복구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습니다. 만약 조선시대처럼 중요한 데이터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재해 복구 시스템이 있었다면 다른 지역 서버로 즉시 전환해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었겠죠. 기술은 500년 전보다 발전했는데 정작 관리하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소홀해진 건 아닐까요?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중화(백업)’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예비 시스템을 만들어 두는 거예요. 전산망 이중화는 메인 서버가 고장 나거나 서버에 화재가 발생하면 예비 서버를 즉시 작동해서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이중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요. 서버 이중화는 똑같은 서버를 2대 이상 운영해서 하나가 고장 나면 다른 하나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네트워크 이중화는 인터넷 회선을 2개 이상 연결해서 A통신사 회선이 끊어져도 B통신사 회선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거예요. 전원 이중화는 정전이 되어도 무정전 전원장치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고, 데이터 이중화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여러 곳에 복사하는 거죠.
은행 ATM이 24시간 작동하는 이유도 이중화 덕분입니다. 구글이나 아마존은 전 세계에 데이터센터를 분산시켜 한국 서버가 다운되면 일본으로, 일본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 싱가포르 서버로 자동으로 연결됩니다.
● 일상 속 백업이 데이터 관리 첫걸음 많은 사람들이 앱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이에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보면, 출산 과정은 짧지만 양육에는 20년 이상 걸립니다. 소프트웨어도 개발보다 운영과 관리에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실제로 전체 앱 생명주기의 60% 이상이 버그 수정과 성능 개선, 보안 업데이트 등 운영과 유지·보수에 할애됩니다.여러분도 경험이 있을 거예요. 과제 제출 직전에 파일이 날아간 경험 말이에요. 매일 조금씩 작업하고 버전별로 저장하고 클라우드에 백업했다면 어땠을까요? 동아리 행사도 마찬가지예요. 비 올 때 대비한 실내 장소, 장비 고장 대비 예비 장비, 진행자가 아플 때 대체 인원 등이 모두 이중화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이중화는 간단합니다. 중요한 파일은 컴퓨터, USB메모리, 클라우드 등 세 곳에 저장하고, 비밀번호는 2단계 인증을 설정하세요. 과제는 날짜별로 파일명을 정해 버전 관리를 하고, 중요한 연락처는 종이에도 적어 두는 아날로그 백업도 유용합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실록을 지켜낸 것처럼 우리도 디지털 시대의 소중한 데이터와 시스템을 지켜야 해요. 화려한 신기술을 만드는 것도 멋있지만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 진짜 전문가의 모습입니다.
이왕렬 서울온라인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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