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준비나 할까" 요즘 2030부터 5060까지, 전 세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입니다. 전 세대가 자격증에 중독된 한국 사회, 그 이면에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구조적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한경닷컴은 취업을 준비하는 2030뿐 아니라,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 열풍에 동참한 5060까지 세대별 현황과 원인을 짚어보고, 우리 사회가 이처럼 자격증 시험에 집착하게 된 배경을 들여다봅니다.
지난 3일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임정현 씨(27)는 최근 환경 기사 자격증의 중요성과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 씨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려면 기사 자격증 하나는 기본"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수질환경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하루에 강의 3~4개씩 듣고 복습하면서 두 달간은 수능 공부하듯 공부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정부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환경기술인에 대한 기업 수요도 높아지는 추세다. 임 씨는 "최근 뉴스를 보거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관련 분야 수요가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 기사 자격증 1개 이상은 필수로 요구하는 공기업이나 환경 기업이 늘고 있다"며 "이미 취업한 공대생 친구 중에도 추가로 기사 자격증을 준비해 따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환경기술인은 대기, 수질, 토양 등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시설을 설치·운영·관리하는 전문 인력을 말한다. 이들은 환경오염 물질 배출 사업장에서 환경 법규를 준수하도록 지도·감독하며, 시설의 정상적인 운영과 관리를 책임진다.
대기환경보전법과 물환경보전법에 따르면 환경기술인은 대기·수질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에 법적으로 반드시 선임돼야 하는 인력이다. 환경기술인이 미배치된 사업장의 경우 선임 미이행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최근 국내에서는 경제 발전과 국민의 환경 인식 제고를 배경으로 환경 관련 규제가 신설·강화되는 추세다. 2024년 말 기준, 굴뚝자동측정기기(CEMS)가 설치된 대형 사업장은 전년 대비 22곳 늘어난 965곳에 달했다. 이들 사업장은 굴뚝원격감시체계(TMS)를 통해 대기오염물질 배출 농도와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관리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실제 추진될 경우 환경 규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기후·에너지 관련 정책은 환경부, 산업부, 외교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어 유기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되면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오염물질 배출 규제 등 환경 관련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보다 강력한 집행력을 바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될 전망이다.
◇ "기업들, 꼼수 안 통해"…환경기술인 선임 늘자 응시자 급증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환경 규제 강화 기조에 맞춰 기업들의 준법 경영과 규제 준수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 제철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생산량이 늘어나면 폐수를 불법 배출하거나 물을 섞어 농도를 희석하는 등의 꼼수가 종종 있었다. 최근에는 환경 규제 위반이 기업 평판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기업들이 비용을 들여 시설을 개선하고 생산 계획을 조정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기업의 준법 경영 의식 제고가 환경기술인 선임으로 이어지면서 환경 기술 자격증 취득 수요가 증가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풀이된다. 실제 대기환경기사 자격증 필기시험 응시자는 2017년 6562명에서 2024년 9263명으로 41% 이상 급증했다.
수질환경기사 자격증 응시 및 취득 변동 추이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2017년 8348명이던 필기시험 응시자는 지난해 9002명으로 약 7.8% 증가했다. 다만 두 자격증 모두 실기시험에서는 시험 개편에 따른 난도 상승의 영향으로 합격자 수가 전년과 비슷하거나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현 취업 시장에서 환경 기사 자격증 보유 여부는 곧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대기환경기사 자격증을 취득 후 관련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라는 환경공학과 졸업생 소성우 씨(25)는 "특히 대기업, 공기업, 환경 컨설팅 회사에서 자격증 취득 여부를 서류 통과 기준으로 삼거나 가산점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실기 난도 급상승에 합격률 30% 아래로 '뚝'
주목할 점은 환경 기사 자격증의 실기시험 난도가 점점 상승함에 따라 합격률이 크게 떨어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7~8년 전만 해도 수질환경기사 실기시험 평균 합격률은 60~70%대였다. 그러나 최근 2-3년 동안은 20~30%대 합격률이 나오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실기 시험의 출제 경향 변화로 인해 수험 난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수질환경기사의 경우, 실기 시험에서 계산 문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게는 70%에 달해 필기 단계부터 계산식 이해도를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학원가 중론이다.
자격증 전문 강의 플랫폼 에듀피디에서 환경 기사 과목을 강의하는 전나훈 교수는 "특히 필기에서 암기형 문제 위주로 점수를 확보한 수험생들이 실기에서 계산 문제와 서술형 문제에 대응하지 못해 낙방하는 경우가 많다. 필기 준비 단계에서부터 공학 기초와 계산 문제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에듀윌에서 환경 기사 과목을 강의하는 이찬범 교수도 "실기시험까지 고려해 계산 문제는 조금 천천히 학습하고 깊이 고민하도록 하며, 특히 단위의 환산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수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험 난도 상승으로 전문 강의를 찾는 수험생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환경 기사 자격증 강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A 자격증 학원 관계자는 "정식 오픈 이후 현재까지 수강생 수는 약 10배가량 증가하며 성장세를 보인다"고 했다.
합격률 하락으로 자격증의 희소성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취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두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는 취준생 김정현 씨(27)는 "취업하기 어려워진 현재 상황에서는 스펙 하나 하나가 매우 소중하다 "며 "힘들게 취득한 자격증인데 난도 상승으로 합격하기 어려워졌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전했다.
◇ 법 과목 축소 추세…"시험 전략 바꿔야"
환경 기사 자격증 시험에서 법 과목 문제 비중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점도 수험생들이 유의해야 할 변화 중 하나다. 수질환경기사의 경우, 올해부터 적용된 새로운 출제기준에 따라 기존 필기 과목 중 하나였던 '수질환경관계법규'가 1과목인 '수질오염개론'에 통합됐다.
전 교수에 따르면, 올해 수질환경기사 필기시험에서 '수질오염개론' 20문항 중 2~3문제만이 법규 관련 내용으로 출제됐다. 대기환경기사 역시 2026년부터 유사한 개편이 예고돼 있다. 현재 별도 과목으로 존재하는 '대기환경관계법규'는 '대기환경관리' 과목에 편입될 예정이며, 법규 관련 문항도 전체 20문제 중 2~3문제 수준으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학원가에서는 법규 과목의 학습 부담이 줄어든 만큼, 수험생들이 실기시험의 주요 과목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최종 합격에는 긍정적인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전 교수는 "시험의 성패는 난도가 높은 실기시험 합격 여부에 달려 있다"며 "실기 출제 비중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수질·대기오염개론(1과목)과 수질·대기오염방지기술(3과목)에 집중돼 있고, 법규 문제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 취업 트렌드 변화…"환경+안전 이중 자격증이 대세"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 직무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대기·수질환경기사 자격증에 더해 산업안전이나 위험물 관련 자격증을 함께 준비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조직 내 '환경안전팀'을 두거나 신설하는 추세고, 환경기술인 업무가 안전관리 업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 기사 자격증의 경우 한 가지 자격증만 보유해도 법적 선임은 가능하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경과 안전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역량이 요구된다. 특히 통합환경관리법 도입 이후 환경기술인 선임 요건이 강화되면서, 복수 자격증 보유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2017년부터 시행된 통합환경관리제도는 대기·수질·토양·폐기물 등 다양한 환경 매체별로 나뉘던 허가 방식을 하나로 통합해, 저비용·고효율의 최적 기술을 적용해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체계다.
환경안전 분야의 환경관리자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강 모 씨(29)는 "현재 대기, 수질환경기사 자격증과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이고 안전 분야에서 진로를 넓히기 위해 위험물산업기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실제로 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면 환경 직무라고 하더라도 업무 범위에 '사업장 안전관리', '시설관리' 등의 업무가 포함된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이유로 관련 자격증이 추가로 있으면 취업에서 우대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소 씨(25)도 "환경기술인이 취업하는 길은 안전 직무, 환경 직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환경 컨설팅 직무로 나뉘는데 산업안전기사, 폐기물처리기사, 토양환경기사 등을 함께 취득하는 게 유리하다"고 전했다.
◇ 환경 자격증 인기지만 "정책 기조와 엇박자" 우려도
전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 최근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 증시에서도 폐기물 처리 기업 등 환경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인다. 이는 글로벌 차원에서 ESG 경영과 탄소중립 압력이 거세지면서 환경 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일 기준 환경부 환경 포털 통계에 따르면 국내 환경사업체 수도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6년 2만6504개였던 환경사업체 수는 15년 연속 증가해 2021년 기준 6만3871개를 기록했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국내외적으로 환경 규제가 더욱 정교하고 강력해지는 상황에서 환경기술인 수요는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성종 한국외대 환경학과 겸임교수는 "학생들의 취업 지도 과정에서도 정부의 통합환경관리제도 도입 이후 대기·수질환경기사 자격증을 모두 갖춘 인재가 우대되는 경향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 자격증이 실무 능력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부터 법규 과목이 시험에서 제외됐지만, 통합환경관리제도의 핵심은 법령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업이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며 "자격증 개편 방향이 정부 정책 기조와 반드시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비판했다. 선진화된 환경 규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격증 제도 역시 전문가 양성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춰 더욱 정교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 교수 지적과 관련 산업안전인력공단 관계자는 "현재 법 과목명만 제외되었을 뿐 관련 법령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다른 과목(방지기술, 공정시험기준 등)에 포함하여 관리되고 있다"며 "기본 법령은 '개론 관련 과목'의 출제기준에 명시하여 관리되도록 자격의 개편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