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글이 씨 뿌린 ‘민주’… 정승 비판 벽보 나붙었다

3 hours ago 6

누구나 의사 표현하는 공론장 열려
읽고 쓰는 삶이 민주사회 기반 다져
◇한글 연대기(훈민에서 계몽으로, 계몽에서 민주로)/최경봉 지음/444쪽·2만5000원·돌베개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뜬게린 락얏 아빠 수사냐(그냥 사과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졌던 가운데 정부 당국이 소셜미디어의 비판 게시물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자, 젊은이들이 이처럼 인도네시아어 문장을 한글로 쓰며 검열을 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문화의 인기 정도와 더불어 한글이 얼마나 익히고 쓰기 쉬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국어학사를 연구해 온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가 한글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한글은 언제부터 ‘한글’이 됐을까. 원래 ‘언문(諺文)’이라고도 불리던 한글은 근대 들어 ‘국문(國文)’이 됐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국문이 ‘일문(日文)’을 뜻하게 되자 대신할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쓰게 된 이름이 ‘한글’이다. 대한제국의 글 또는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한문(韓文)’을 풀어쓴 것이었는데, 나중에 ‘큰’ ‘위대한’과 같은 의미가 덧붙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해 백성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고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한글은 그 이상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창제 뒤 불과 6년이 지난 시점에 정승을 비판하는 벽보가 한글로 나붙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을 공론화할 수 있는 공론장을 한글이 열어젖힌 셈이다. 17세기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한글 소설은 조선이 근대적 민족 공동체에 한 발 다가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한글이 담는 지식과 사상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져 오늘날 민주 사회에 이르렀다.

책은 이 밖에도 한문은 어떻게 해체됐는지, 한글 신문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외래어 표기와 맞춤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았는지, 국어사전은 어떻게 편찬됐는지 등을 꼼꼼히 살폈다. 한글 세계화와 기계화, 한글날 제정의 역사도 조명했다.

“한글이라는 문자가 한국어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고 그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가를 그려 낸 장대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전 일본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의 추천사가 과하지 않다.

책의 향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글로벌 포커스

    글로벌 포커스

  • 횡설수설

  • 새로 나왔어요

    새로 나왔어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