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공을 까먹고 싶었어요”…경쾌한 사랑, 묵직한 여운

5 days ago 18

윤고은 소설가의 신작 ‘테니스나무’(문학동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여름밤이었다. 소설가 윤고은(46)이 주택가 테니스코트를 지나는데 흙바닥에 라임색 열매 같은 것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테니스공이었다.“까먹고 싶었어요.”엉뚱한 말 같지만, 그에겐 꽤 자연스러운 연상이었다. 테니스공은 북실북실한 털로 덮여 있고, 어둠 속에 흩어져 있는 모양새는 마치 나무에서 툭툭 떨어진 과일처럼 보였다. 다음 날 같은 곳을 지날 땐 테니스공이 카트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제철과일 코너 같았다. 한번 시작된 상상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그 장면에서 소설이 자랐다. 윤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테니스나무’(문학동네)는 한여름에서 가을을 지나 다시 여름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한 연인의 사랑을 따라간다. 21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소설에 유독 비유가 많다는 말에 “성가실 정도”라며 웃었다. “일상에서 이런 순간을 정말 많이 마주해요. 사물이나 풍경을 보면서 자꾸 뭔가를 연상하는 거죠. 귀여운 버전도 있고 무서운 버전도 있어요. 그냥 제 기질인 것 같아요.”그런데 이 연애 소설, 마냥 귀엽지만 않다. 인공지능(AI), 자동화, 플랫폼, 관할 구역, 분업화된 노동 같은 것들이 끼어든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윤 작가는 7년 넘게 생방송 라디오 ‘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진행하며 주 4회 경기 성남시 분당 집에서 고양시 일산 스튜디오까지 출퇴근하고 있다. 환승을 두세 번씩 하던 어느 날, 지하철역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전날에도 같은 옷차림과 자세로 누워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혹시 계속 쓰러져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역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답은 “지금 어느 노선이냐”는 질문이었다. 관할 노선 아니면 도와주기 어렵단 설명이 이어졌다.그 경험이 ‘테니스나무’의 한 축이 됐다.“관할 구역이 나뉘어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인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거죠. 소설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깔려 있던 사회 인식 중 하나가 컨베이어벨트처럼 모든 게 흘러가고, 각자에게 ‘나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어요.”윤 작가는 “이렇게 흘러가는 움직임이 결국 어떤 것에 일조하는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현대인에겐 없는 것 같다”며 “열심히 일 했지만 거대 악을 만들 수도 있고 위험을 방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역할이 촘촘하게 나뉠수록 오히려 아무...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