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왕족이 장악한 권력구조
트럼프 스타일과 비슷해 동질감
첨단산업 발전 도움 기대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21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연례 카타르경제포럼(QEF)의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미국에 투자하라)’ 세션에서 관세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선 출마 의향을 묻는 질문에 “모른다. 언젠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부름(calling)이 있다면”이라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 자신이 하고 있는 암호화폐 사업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카타르를 국빈 방문해 보잉 항공기 210대 판매를 포함해 1조2000억 달러(약 1678조 원) 규모의 경제 교류를 창출하는 합의에 서명했다. 트럼프 주니어가 부친이 다녀간 지 일주일 만에 카타르를 찾아 ‘오일머니 투자 유치’에 나섰단 평가가 나온다.
이날 구트라(중동 남성들의 전통 두건)를 두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 출신 청중은 주의 깊게 그의 연설을 지켜봤다. 행사장에서 만난 미국계 투자회사의 UAE 지사 간부는 “최근 중동에선 트럼프 행정부와의 네트워킹을 위해 대통령과 그 가족 및 측근들의 사업에 적극 투자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걸프 산유국과 벌이는 대규모 사업을 두고 미국에서는 “심각한 이해 충돌”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거액을 투자한 걸프 산유국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 일가를 반기는 분위기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탄생한 첫 번째 ‘친(親)걸프’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소수의 왕족이 정치, 경제 분야 요직을 장악하는 걸프 산유국 특유의 권력 구조가 트럼프 일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최측근에게 여러 중책을 맡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걸프 왕정과 흡사하다는 것. 예컨대 카타르 통치 서열 2위인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 사니 총리는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국왕의 친척으로, 외교장관은 물론이고 핵심 국영기업인 카타르에너지(QE) 이사회 의장까지 겸하고 있다. F 그레그리 가우스 3세 텍사스A&M대 국제관계학과 석좌교수는 “걸프 왕정은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식 권력 구조에 동질감을 느낀다”며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사위 쿠슈너에게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의 관계 정상화 협상을 맡겼을 때 걸프 사람들은 ‘마침내 말이 통하는 정권이 들어섰다’며 반겼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인공지능(AI) 같은 비(非)석유 부문의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걸프 국가들의 중장기 경제 성장 전략을 트럼프 행정부가 도와줄 거라는 기대감도 크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첨단 AI 반도체가 중국 등으로 우회 수출될 가능성을 우려해 걸프 산유국에도 수출 물량 한도를 뒀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 순방을 앞둔 7일 이 정책을 폐기했다. 올 3월엔 카타르가 70%의 지분을 소유한 미 텍사스주 액화천연가스(LNG) 가스전의 사업 허가도 연장해 줬다.도하=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