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항법의 진화: "생애주기 운용이라는 발명"[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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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투자는 너무 어려운데, 그냥 알아서 좀 굴려주면 안 됩니까?”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하소연입니다. 자산 배분, 리밸런싱, 종목 선정… 본업 하기도 바쁜 직장인들에게 펀드매니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연금 선진국들은 개인이 매번 고민하지 않아도 생애주기에 맞춰 돈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상품 이름이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젊을 때는 장기 수익을 얻을 만큼 투자하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위험을 줄이는 자산배분을 사람이 잊어버려도 계속 작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필요했던 것 — 자동으로 늙어가는 포트폴리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401(k)가 확산되면서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가입자들이 처음에 상품을 고른 뒤, 수십 년 동안 포트폴리오를 거의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대 청년이 안전하다며 채권에만 넣어두고 잊어버리거나, 은퇴를 앞둔 60대가 과거에 설정해 둔 고위험 주식 비중을 그대로 방치하다가 은퇴 직전 폭락장을 맞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는 특정 상품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위험을 줄이고, 정기적으로 자산배분을 조정하는 기능이 개인의 기억과 의지에 맡겨져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필요를 상품으로 구현한 대표 사례가 1990년대 중반 등장한 TDF(Target Date Fund, 타깃데이트펀드)입니다. 항공학 용어인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 비행기가 착륙할 때 고도를 낮추듯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자산배분 곡선)’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고도를 서서히 낮추듯, 사람의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식 비중을 자동으로 낮추자.” 웰스파고의 ‘라이프패스(LifePath)’ 펀드는 이 흐름을 연 초기 사례로 꼽힙니다. 개인은 복잡한 리밸런싱을 매번 직접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은퇴 예정 연도에 맞는 펀드를 고르면, 펀드가 정해진 글라이드 패스에 따라 젊을 때는 더 적극적으로,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더 안정적으로 자산배분을 바꾸어 갑니다. 두 갈래의 길 — 기금이 해주느냐, 상품이 해주느냐 근로자의 선택 권한은 이론적으로 직접 선택·위임 선택·집단 선택 세 가지로 나뉩니다. 생애주기 자동운용은 그중 위임·집단 선택을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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