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뒤로 빼야 보이는 것-내가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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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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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은 안막히는데문제는 뒤에

한때 광고계에서 회자됐던 네덜란드 통신사 KPN Mobile의 광고 시리즈 중 'La caravane'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광고에는 휴가를 떠나는 노부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카라반을 끌고 프랑스 아비뇽으로 향하는 한적한 도로를 여유롭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 메시지로 "아비뇽으로 가는 국도에 심각한 정체가 있다"는 교통정보가 전달된다. 노부부는 자신들이 달리고 있는 도로가 아비뇽으로 가는 국도가 맞는지 다시 확인한 후 의아하다는 듯 웃는다. 눈앞의 도로는 전혀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차 앞은 시원하게 뚫려 있고, 음악이 흐르는 차 안은 평온하다. 두 사람은 교통정보가 틀렸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운전을 계속한다.

그런데 곧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주위 도로의 모습을 비추자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펼쳐진다. 노부부의 차 뒤로 끝없이 이어진 차량 행렬이 답답한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은 도로가 막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체의 맨 앞에 그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정체를 피한 것이 아니라, 정체를 만들고 있었다.

이 짧은 광고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반전의 재치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 우리 일상과 조직, 나아가 법과 사회를 관통하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원칙을 어기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으며,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한속도를 넘지 않았고, 차선을 지켰으며, 급하게 끼어들지도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운전이다.

그러나 도로 전체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나치게 느린 속도,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 주변 흐름을 보지 않는 태도는 그 자체로 병목이 된다.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더라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에게 불편과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 원칙에 충실하다는 사실이 언제나 면책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조직 생활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만 정확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절차를 충실하게 따르고, 보고 체계를 지키며, 정해진 원칙을 준수하려 한다. 스스로는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움직이거나, 신중함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거나, 자기 책임만 생각해 융통성 없이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부서의 일정은 꼬이고, 동료들은 기다리다 일이 쌓이며, 결국 전체 프로젝트는 지연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힘들지 않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만 그 뒤에서 동동거리며 길게 줄을 서 있는 셈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왜 나만 편한가."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만 특별히 힘든 점이 없다면, 그것은 반드시 내가 일을 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내가 부담을 잘 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부담을 넘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여유로운 이유가 나의 효율성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내 몫의 불편까지 떠안고 있기 때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로 위 노부부가 그랬듯, 앞이 비어 있다고 해서 전체 도로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농담처럼 "어디에나 일정 비율의 빌런, 이른바 진상은 있다"고들 말한다. 경험칙상 어느 조직이나 모임이든 갈등을 만들고, 분위기를 흐리고, 타인을 지치게 하는 사람은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주변에 진상이 없다면 한번쯤 의심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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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내 주변에는 이상할 정도로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유독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혹시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내가 가는 곳마다 갈등이 생기며,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를 두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내가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까다롭고 비협조적이며 이해심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카메라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정체의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

규정과 절차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미로가 아니라, 조화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한 기준이자 협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규정의 문언만 형식적으로 해석하고 그 취지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민폐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위 광고가 보여주는 장면은 단순한 교통 풍자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의 풍경을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막히지 않으면 도로도 막히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동체는 각자의 앞 유리 너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뒤편, 기다리는 사람들, 지연되는 업무, 누적되는 피로까지 포함한 전체가 공동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카메라를 뒤로 빼는 습관이다. 지금 내 앞이 비어 있는지보다, 내 뒤에 무엇이 쌓이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내가 편안한 이유가 상황이 원활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인지 확인해야 한다. 주변에 문제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는 문제의 중심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도로 위의 카라반은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자의든 타의든 정체의 맨 앞에 설 수 있다. 그 상황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앞이 시원하게 열려 있는지만 바라보는 좁은 시각이 아니라, 내 주변 상황과 전체 흐름까지 살피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내가 혹시 전체 흐름을 막고 있지는 않은가." 그 질문을 놓치지 않을 때, 원칙은 비로소 공동체를 위한 질서가 되고, 개인의 편안함은 타인의 불편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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