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5성호텔 경영…김영문 메이필드호텔 대표
해외체인 아닌 토종 브랜드
한식당 두곳 수십년 고집도
휴식·연회 프로그램 차별화
가치소비 2030세대 등장
럭셔리 호텔시장 성장 기대
농사짓듯 서비스 가꿔야
고객 마음에 신뢰도 쌓여
서울 시내 호텔들이 앞다퉈 해외 체인 간판을 달고 몸집을 불리는 와중에도 묵묵히 자기 색을 지켜온 곳이 있다. 3만평 녹지 위에 토종 브랜드를 내걸고 한옥으로 된 한식당까지 운영해온 메이필드 호텔이다. 효율화·표준화가 문법이 된 호텔업계에서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길을 고집해온 것이다. 취임 10주년을 맞아 최장수 5성급 호텔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김영문 메이필드호텔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K호텔의 정체성에 대해 들어봤다.
김 대표에게 호텔업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묻자 "농사일과 똑같다"고 표현했다. 매일 사람을 돌보고, 브랜드를 가꾸고, 손님의 신뢰를 쌓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노력은 당장 티가 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쌓여 결국 손님들 마음속에 남게 된다"고 말했다.
◆ 10년 비결은 의지와 에너지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원동력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의지'와 '에너지'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명확한 목표를 세울 의지가 있어도 이를 뒷받침할 체력적 에너지가 없으면 결국 좌절하게 된다"며 "반대로 의지 없이 에너지만 넘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금도 꾸준히 운동과 자기관리를 이어가는 이유다.
김 대표는 브랜드 전략에서도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해외 체인 브랜드 제안이 꾸준히 들어오지만 독자 브랜드와 직영 운영을 고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기업 계열을 제외하면 서울 시내에서 토종 브랜드를 유지하는 5성급 호텔은 메이필드가 유일하다"며 자체 브랜드 확장에도 공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창경궁 옆에 도심형 호텔 '메이플레이스'를 선보였고 북창동 먹자골목 일대에도 신규 호텔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획일화된 서비스가 아닌 그 도시만의 색깔과 경험을 담은 호텔을 찾는 수요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가꿔 나가 게 목표"라고 말했다.
◆ 한옥 식당은 우리의 자산
이 같은 철학은 한식당 운영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메이필드호텔은 갈비집 '낙원', 한식당 '봉래헌'을 운영하고 있다. 한식당 두 개를 유지하고 있는 호텔은 서울 시내 단 두 곳뿐이다. 봉래헌은 대목장이 지은 한옥 건물에 들어서 있으며 식재료 일부를 충남 예산 농장에서 직접 재배해 조달한다. 2002년 봉래헌 개관 때부터 합류한 이금희 조리장도 여전히 주방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는 "한식은 반찬이 많아 재료비도 많이 들고 집밥과 비슷하다는 인식 때문에 제값을 받기도 쉽지 않다"며 "그래도 우리 것이기에 사명감으로 수십 년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어 "특급호텔 한식당 중 유일하게 한옥 식당이라는 점이 우리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이처럼 '손 많이 가는' 길을 고집하는 건 결국 호텔의 하드웨어 경쟁 시대가 끝났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 대표는 호텔업의 미래를 '웰니스'와 '플랫폼' 두 단어로 정의했다. 그는 "이제 웬만한 집의 인테리어가 호텔보다 좋아져 하드웨어로 승부 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호텔이 호화로운 방에서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고객의 '회복'을 돕는 체험형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이필드호텔도 3만평 정원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 호텔은 사람 온기 나누는 장소
미래 호텔의 두 번째 기능은 '만남의 플랫폼'이다. 김 대표는 "돌잔치·환갑 등 가족 모임의 공간을 제공해왔듯 취미·비즈니스 등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소셜 커뮤니티로 진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일수록 결핍되기 쉬운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장소가 호텔의 궁극적 지향점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미래의 호텔리어는 극단적으로는 '상담가' 역할까지 부여될 것"이라며 "고객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때 비로소 웰니스 호텔로서 회복력이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읽은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운 소비 세대가 있다. 하룻밤 100만원도 기꺼이 지불하는 20·30대의 가치 소비 덕분에 '럭셔리 호텔의 무덤'으로 불리던 서울 호텔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이를 '질적 성장의 신호탄'으로 봤다. 그는 "이제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며 "럭셔리 호텔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시장이 자라나게끔 정책적인 유인책을 마련하고 숙박 시설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짚었다.
[박태일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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